한때 '사우디 왕세자 멘토'로 불린 UAE 대통령, 사우디 국제회의 불참
(뉴욕=연합뉴스) 고일환 특파원 = 한 때 중동 지역에서 정치·군사적으로 가장 밀접한 관계였던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가 멀어지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3일(현지시간) 중동의 석유 부국인 두 국가가 지역 주도권과 경제적 이권 등을 놓고 충돌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절친한 관계였던 사우디아라비아의 실권자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와 아부다비 왕세제인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 나하얀 UAE 대통령도 서로를 피하는 사이가 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월 UAE에서 열린 중동국가들의 정상회의에 사우디 왕세자가 참석하지 않았고, 지난해 12월 사우디 리야드에서 열린 중국·아랍정상회의에는 UAE 대통령이 불참했다.
WSJ은 관계자들을 인용해 두 지도자가 의도적으로 상대방을 피하고 있다고 전했다.
61세인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 나하얀 대통령은 37세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멘토로 불릴 정도로 가까운 관계였다. 수년 전에는 최소한의 수행 인원만 동반한 채 사우디 사막에서 매사냥을 함께 하기도 했다.
두 사람이 불편한 관계가 된 것은 다양한 사안에서 양국의 이해가 충돌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양국의 시각이 가장 엇갈린 것은 예멘 내전에 대한 입장이다.
사우디와 UAE는 내전에서 연합군으로 참전해 후티 반군과 싸웠지만, UAE는 지난 2019년 철군을 선언했다. 이 과정에서 사우디는 UAE에 상당한 배신감을 느낀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UAE는 예멘 정부와 협상을 통해 정부군에 각종 지원을 해주는 대가로 전략적 요충지인 홍해에 군사기지를 세울 수 있는 권리를 얻었지만, 이번에는 예멘 정부에 영향력을 발휘하는 사우디가 반대하고 나섰다.
사우디는 UAE가 기지를 설치한 예멘의 섬 인근에 아랍연합군 소속인 수단군을 배치, 일종의 위협 신호를 보내기도 했다는 설명이다.
이와 함께 UAE가 지난 2020년 당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중재로 이스라엘과 외교 관계 정상화에 나선 것도 사우디의 신경을 건드렸다.
반대로 UAE는 지난 2017년에 사우디와 함께 단행한 인접 국가인 카타르에 대한 공동 봉쇄 정책이 2021년 사우디-카타르의 국교 정상화로 무너진 데 대해 섭섭함을 느꼈다는 후문이다.
경제 분야에서의 갈등도 심화하고 있다.
사우디가 지난해 러시아 등이 참여하는 산유국 단체 '오펙 플러스'(OPEC+)를 통해 석유 생산량을 감축하는 방안을 강력히 추진하는 과정에서 UAE는 오히려 증산을 추진했다.
감산은 경제적으로도 이익이 없고, 미국과의 관계를 악화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UAE 대통령은 친동생인 타흐눈 빈 자이드 알 나하얀 국가안보보좌관을 비밀특사로 사우디에 파견했지만, 무함마드 왕세자는 감산 추진 계획을 그대로 밀어붙인 것으로 전해졌다.
WSJ은 이후 중동의 양대 강국으로 꼽히는 두 국가의 갈등이 지역 주도권 경쟁으로 번지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해 11월 UAE 대통령은 아부다비에서 열린 포뮬러 원(F1) 경주에 바레인 국왕을 초청해 함께 관람했다. UAE가 중동에서 대표적으로 사우디에 의존하는 국가인 바레인에 손을 내밀었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UAE는 지난달 카타르와 바레인 국왕의 전화 통화를 주선하면서 스스로의 영향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WSJ은 중동에서 각국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역할은 전통적으로 사우디의 몫이었다고 지적했다.
kom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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