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3면 포위하고 압박 가속…시내선 시가전 가열
"우크라, 바흐무트 일부서 퇴각 준비하는 듯"
젤렌스키 절대사수 입장 흔들리며 피란민도 관측
(서울=연합뉴스) 황철환 기자 = 7개월째 전투가 이어지고 있는 우크라이나 동부 최격전지 바흐무트의 전황이 우크라이나군에 갈수록 불리해지고 있다.
러시아군은 바흐무트 시내의 우크라이나군을 3면으로 포위한 상태다. 도시 주변에선 우크라이나군 보급로를 중심으로 일진일퇴의 격전이 벌어지는 중이다.
4일(현지시간)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우크라이나군은 이날 오전 내놓은 전장상황 평가 자료에서 도시를 포위하려는 러시아군의 활동이 계속되고 있다면서 "수비군은 (최근 24시간 사이에만) 여러 차례 공격을 막아냈다"고 밝혔다.
바흐무트를 점령하려는 러시아군 공세의 주축을 맡아 온 민간용병기업 바그너그룹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은 전날 바흐무트의 우크라이나군이 "기본적으로 포위됐다"면서 아직 서쪽으로 열려 있는 길은 하나뿐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러한 주장의 진위와 별개로 바흐무트 전투의 향방은 바흐무트 서쪽의 시골길들을 둘러싼 격전에서 어느 쪽이 우세를 점하느냐에 달린 것으로 보인다고 NYT는 진단했다.
바흐무트 서쪽 소도시 차시우야르와 남동쪽 이바니우스케 마을로 이어지는 두 개의 도로가 차단되면, 바흐무트에 남아 항전 중인 우크라이나군 수천명이 보급이 끊긴 채 고립될 수 있어서다.
영국 군정보기관인 국방정보국(DI)은 4일 트위터로 공유한 일일 보고서에서 바흐무트와 차시우야르를 잇는 도로에 있는 다리를 포함해 주요 교량 2개가 최근 폭파됐다고 밝히기도 했다.
바흐무트 시내에선 버려진 주택과 공장 건물 등을 중심으로 시가전이 벌어지고 있다. 올렉산드르 마르첸코 바흐무트 부시장은 영국 BBC 방송과 한 인터뷰에서 "시내에서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 우크라이나군 덕분에 그들(러시아군)은 아직 도시를 장악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는 바흐무트 자체의 전략적 중요성은 크지 않다는 입장을 보여왔다.
교통의 요지여서 러시아계 주민이 많은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도네츠크주와 루한스크주) 지역 전체를 장악하기 위한 교두보가 될 수 있다지만, 우크라이나군이 이미 바흐무트 함락에 대비해 겹겹의 방어선을 구축한 상황인 까닭이다.
그런데도 우크라이나군은 바흐무트를 쉽게 내주지 않은 채 소모전을 감수해 왔다. 작년 9월 부분 동원령으로 예비군 수십만명을 충원한 러시아군이 공세에 박차를 가하는 상황에서 적의 기세를 더욱 높여줄 수 있다고 우려했을 수 있다.
바흐무트에서 러시아군의 전력을 최대한 깎아낸 뒤 역습을 시도하겠다는 전략의 일환이란 분석도 나온다. 우크라이나군은 바흐무트 전선에서 자국군 병사 한 명이 숨질 때 러시아군은 7명이 사망한다고 주장해왔다.
러시아 입장에서 바흐무트 점령은 작년 7월 이후 처음으로 우크라이나내 주요 도시를 차지한다는 상징적 의미가 있다.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이 4일 우크라이나 동부 전선을 찾아 군 지휘소를 시찰하는 등 행보를 보인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군사 전문가들은 바흐무트의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군에 완전히 포위돼 무너질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평가했다고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전했다.
미국 워싱턴DC 소재 싱크탱크 전쟁연구소(ISW)는 바흐무트 주변 주요 다리를 폭파한 건 우크라이나군이라면서 "우크라이나군이 조심스럽게 전투를 지속하면서 바흐무트 일부 지역에서 퇴각하기 위한 상황을 조성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바흐무트 동부 지역 등에서 병력을 빼기에 앞서 러시아군의 진격을 방해할 목적으로 일부 도로를 파괴한 것일 수 있다는 이야기다.
여러 차례 바흐무트 사수를 공언해 왔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최근 들어서는 전황이 갈수록 어려워진다면서 입장을 전환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그런 가운데 바흐무트 주변에선 여태 피란하지 않았던 주민들이 우크라이나군의 도움을 받아 후방으로 몸을 피하는 모습이 관찰되고 있다고 AP 통신은 보도했다.
피란민들은 자칫 표적이 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차량을 이용하지 못한 채 도보로 이동하고 있다.
바흐무트 인근에선 임시로 구축한 다리를 건너려던 민간인 남녀 3명이 러시아군 포격에 숨지기도 했다고 우크라이나군은 밝혔다.
바흐무트 주민들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전투에 도시 상당 부분이 폐허가 됐다고 토로했다.
집에 남길 선택한 한 현지인 부부는 AP 통신과의 통화에서 "인도적 구호는 한달에 한 번만 받는다. 전기도, 물도, 가스도 없다. 여기 남은 모두가 살아남기를 신에게 기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hwangch@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