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떠나온 러 이주민, 아르메니아 등에 자체 학교 설립
교실서 전쟁 질문 줄줄이…"자유롭게 토론하지만 정치적 발언은 조심"
(서울=연합뉴스) 신유리 기자 = "아이들은 전쟁이 왜 일어났는지 알고 싶어해요. 앞으로는 어떻게 되는 건지 걱정도 많이 하죠. 눈물을 터트리기도 합니다."
러시아 시베리아에서 역사를 가르치던 32살 교사는 지난해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고국을 떠나 아르메니아 예레반으로 옮겼다.
더는 자신이 바라는 방식으로 아이들을 가르칠 수 없게 됐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타향에서도 그는 자신처럼 고향을 떠나온 러시아 이주민 아이들을 위한 '자유 학교'(Liberated School)에서 교사로 일하고 있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그는 전쟁이 남긴 딜레마에 직면하는 것은 마찬가지라고 한다.
그는 교실에서 아이들이 난감한 질문을 쏟아낸다면서 "아이들은 우리가 왜 지금 여기 와있는지 역사적, 정치적 측면에서 알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들 학생이 인터넷을 할 줄 아는 세대로, "전쟁이 끝나면 어떤 결과가 러시아를 기다리고 있을지 잘 알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아이들은 전쟁의 원인을 알고 싶어하며, 불안을 떨치지 못한 채 앞으로 닥칠 미래를 걱정한다고 이 교사는 덧붙였다.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5일(현지시간) 기사에서 이처럼 해외로 피신한 러시아 이주민 자녀들이 타향에서 맞닥뜨린 혼란이 점점 커진다고 진단했다.
이주민 중에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냈다가 정치적 보복을 우려해 망명한 이들도 있고, 단순히 징집령을 피해 국경을 넘은 이들도 있다.
수십만명으로 추정되는 이들 이주민이 타향에서 자체적으로 학교를 세우고 자녀 교육을 이어가면서 일부 교실에서는 좌충우돌 속에서도 새로운 시도에 나섰다.
우선 '자유 학교' 교실에서는 역사 속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관계, 소련 붕괴 등을 포함해 다양한 주제로 토론 시간을 마련한다고 한다.
학생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내면서 반론을 주고 받고, 역사와 국제법에 대해서도 배우도록 유도한다는 것이다.
다만 교사들은 개인적 의견을 제시하지는 않고, 질문과 대답이 오가며 대화가 이어지도록 한다는 게 이들 교사의 설명이다.
이런 교실 풍경은 러시아 현지 학교와는 사뭇 다른 것이라고 WP는 짚었다.
전쟁 이전에도 러시아 학교는 대체로 엄격하고 일방적인 분위기였으며, 암기식 교육 위주였다는 것이다.
전쟁 이후에는 일부 러시아 학교에서 '애국심 수업'을 의무적으로 듣도록 했으며, 교사들은 전쟁 반대 견해를 밝혔다가 징역형에 직면하는 처지라고 WP는 전했다.
예레브의 '자유 학교'는 이런 상황을 피하려는 교사들과 부모들이 해외에 세운 학교 중 하나로, 현재 200명 정도가 다닐 정도로 규모가 커졌다.
이 학교에서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사진을 내걸지 않았으며, 러시아 교과서 대신 자체 교재를 많이 쓴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도 정치적으로 민감한 상황이 여전히 빚어지는 실정이다.
이 학교 설립자는 "우리는 대부분의 러시아 학교보다 다정한 분위기"라면서도 아직 정치 토론에서는 긴장감이 남아 있다고 전했다.
이는 이들 러시아 가족이 물리적으로는 국경을 넘어왔지만 여전히 대다수는 고국과 연결고리를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이 설립자는 설명했다.
이처럼 학부모마다 견해가 제각각 다를 수 있다는 점에서 교사들은 학생이 개인적 생각을 물었을 때 대답을 하기는 하지만 교실에서 공개적으로 언급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이 설립자는 "아이들은 자신만의 결정을 내려야 한다"면서 "정치적 상황에 어떻게 자신이 연결될지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newglass@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