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별 보상 미루다 집단소송 이어지자 2000년 정부·가해기업들이 재단 설립
(베를린=연합뉴스) 이율 특파원 = 정부가 6일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국내기업 위주의 재단이 대신 배상금을 지급하는 해법을 공식추진하기로 한 가운데, 가해 기업과 정부가 배상을 주도한 독일의 사례가 눈길을 끈다.
1939∼1945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정권 주도로 1천300만여 외국인을 강제노역에 끌어들인 독일은 2000년대 들어 가해 기업과 정부 주도로 재단을 설립, 피해배상에 나섰다.
나치 정권 당시 독일과 독일이 강제점령한 지역의 강제노역자는 2천600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되며 전시 독일 전체 노동력의 25%를 차지했다. 이들은 군수산업을 중심으로 독일 대기업이나 중소기업은 물론, 교회, 가정에서 일했다. 많은 이들은 비인간적인 조건 속에서 일을 해야 했으며 강제노역 중 사망에 이르기도 했다.
독일 정부는 전후 1953년 연방피해배상법을 제정하면서 정치적 인종적 이유에서 비롯된 박해 피해자가 아닌 개별 외국인 강제노역 피해자는 배상 대상에서 제외했다.
하지만, 1990년대 들어 미국에서 나치의 강제노역 피해자들의 집단 손해배상 소송이 이어지면서 미국의 압박이 지속된 가운데 강제노역과 관련한 책임을 묻는 사회적 논의를 위한 시도가 잇따르자 1998년 연방의회에서 독일 경제계가 동참하는 피해배상 재단 설립이 결의됐다.
이후 1999년 12월 17일 요한네스 라우 독일 대통령은 나치정권 당시 강제노역의 배상과 관련한 합의를 발표했다. 그는 당시 2천500만여 강제노역 피해자에 저질러진 부당함에 대해 용서를 구했다.
이듬해 2차 대전 당시 외국인 강제노역의 수혜를 입은 지멘스, 폭스바겐, 바이엘 등 6천500여개 기업들이 50억 마르크, 독일 정부가 50억 마르크를 각각 출연, 모두 101억 마르크(약 52억 유로·7조2천억원) 규모의 기금을 모아 2000년 8월 '기억, 책임 그리고 미래'재단을 설립했다.
이후 재단은 2001년부터 2007년까지 7개 국제협력기관과 협업을 통해 폴란드, 체코, 러시아,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등 100여개국 강제노역 생존자 166만명에게 500유로∼7천700유로(69만∼1천68만원)까지 모두 44억 유로(약 6조1천억원)를 배상했다.
배상을 신청한 피해자는 220만명이었지만, 전쟁포로나 서유럽 민간 강제노역자는 배상 대상에서 제외됐다.
yulsid@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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