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케임브리지대 강연…"신냉전 구도 ,한반도 안정에 위협"
"우크라전 장기화 우려, 적정선 타협해 빨리 끝나길" "강제징용 해법 걱정돼"
(런던=연합뉴스) 최윤정 특파원 = 정세균 전 총리는 한국과 유럽이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문제를 시급히 함께 해결하고 보호무역 확산을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정 전 총리는 7일(현지시간) 오후 영국 케임브리지대 다윈 칼리지에서 '새로운 국제질서에서 한국의 역할' 주제로 한 강연에서 이같이 밝혔다.
정 전 총리는 "자유진영 국가들이 미국의 방위부담을 같이 떠맡으려면 동맹국들의 경제력도 튼튼해야 하며 그런 점에서 IRA 문제는 국제사회가 중지를 모아 해결할 시급한 현안"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동병상련 입장에서 한국과 유럽이 힘을 모아 미국의 자국우선주의가 세계 경제질서를 왜곡하지 않도록 막아야 한다"며 "IRA가 세계 무역규범을 훼손하는 보호무역 확산의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정 전 총리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관해서는 "우크라이나가 너무 힘들면 안 되겠지만 러시아도 체면을 유지하는 가운데 적정선에서 잘 타협해서 전쟁이 빨리 끝나면 좋겠다"며 "신냉전 구도는 한반도 안정에 위협이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러시아가 어려워지면서 중국, 북한과 같이 북방 3각 연대를 형성하고 그러면서 한국, 미국, 일본간 남방 3각 연대가 공고해지면 신냉전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전쟁이 길어지면 전술적 승리를 달성하더라도 국제질서 재편과정에서 자유주의 진영의 세력이 약화되는 전략적 손실을 감내해야 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전쟁 장기화로 자원이 부족한 나라들과 개발도상국들이 경제 압박을 심하게 받는 피해자가 됐다"며 "이들 피해국에서 국민의 불만을 등에 업은 강성 지도자들이 등장하면서 국수주의적 성향을 보일 가능성이 크고, 이럴 경우 국제질서의 탈(脫)자유주의화는 더욱 가속화될 것"이라고 경계했다.
정 전 총리는 북한 핵 문제에 관해서는 "북한의 전략적 셈법을 바꿀 구상을 만들어 제안을 해봐야 한다"며 "가능성이 희박해도 평화에 마지막 기회를 주는 것이 대책 없이 전쟁 위기 속으로 들어가는 것보다는 낫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정전상태를 마감하는 종전선언을 채택하고 남북한 양국이 정상국가 관계로 들어가면 한반도 상황이 더 안정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중국에 관해선 "중화적 세계관이 패권을 지향하는 것이라면 이는 국제질서에 중대한 위협 요인이 될 것"이라며 "미·중 패권 경쟁으로 인해 발화 가능성이 높은 지점은 남중국해·동중국해·대만해협·한반도 등 동아시아에 집중돼 있고, 일단 전쟁이 나면 세계 분쟁으로 비화할 공산이 크다"고 우려했다.
대만 문제를 두고는 "미·중 모두 한 치도 물러설 수 없는 자존심과 운명이 걸린 사안으로, 서로를 현상 변경 세력으로 규정하고 있다"며 "이런 오해는 사태를 더욱 악화시킬 따름이니 모두가 더 상황을 악화시키지 않도록 국제사회가 권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 전 총리는 "현 국제질서가 수정 압력을 받고 있지만 순기능도 컸으므로 지금 질서를 크게 바꿀 필요가 없고 단지 미국이 홀로 담당한 역할을 한국을 포함한 많은 서방국가들이 공동으로 감당할 자세를 가져야 한다"며 "이런 차원에서 국제 협력은 더욱 필요하고 배타주의와 일방주의는 배격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각 진영 내에도 다른 목소리를 내는 다극 체제가 작동하는 것이 평화를 위해 더 바람직하다"며 "양극체제를 전제로 진영대립을 강화하면 세계역사는 충돌 코스로 들어갈 확률이 더 높다"고 지적했다.
정 전 총리는 일본 강제징용 해법과 관련한 질문에는 "일본과 잘 지내야 하긴 하지만 우선 피해자들이 수용하기 어렵고 국민 정서와 안 맞고 사법부 판결과도 잘 조화가 안돼서 걱정이다"라고 답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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