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외국대행기관법'과 유사…"반정부 언론·단체 탄압에 악용" 우려
보렐 고위대표 "EU 기준에 안 맞아"…美도 "전략적 파트너 관계 저해"
(서울=연합뉴스) 김지연 기자 = 캅카스 지역의 구 소련 국가 조지아가 외국 지원을 받는 자국 내 언론·비정부기구(NGO)를 통제하는 법안을 밀어붙임에 따라 항의 시위가 거세지고 있다. 서방도 우려를 표명하고 나섰다.
7일(현지시간) AP·AFP·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이날 조지아 수도 트빌리시의 의회 앞에 수천 명이 모인 가운데 이 법안이 표현의 자유 등을 침해한다며 철회를 촉구하는 집회가 열렸다.
집권당 '조지아의 꿈'이 지지하는 이 법안은 이날 의회의 1차 독회(심의)를 통과했다.
이 법안에 따르면 외국에서 20% 이상 자금을 지원받는 언론 매체나 NGO 등은 '외국 영향을 받는 대행기관'으로 등록해야 한다.
러시아가 2012년 이와 비슷한 외국대행기관법을 제정했고 작년 12월에는 이를 강화하는 법 개정까지 했다.
실제로 이 법은 러시아 정부에 반기를 드는 단체를 폐쇄하는 데 활용되는 등 정부 비판 여론을 탄압하는 결과로 이어진 것으로 평가된다.
며칠째 의회 앞에서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는 사람들은 "러시아 법에 반대를!", "당신들은 러시아인!", "노예들!"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법안에 거세게 반발했다.
조지아 경찰이 시위대를 향해 최루탄과 물대포를 쏘고, 한 시위자가 경찰을 향해 화염병을 던지는 모습도 TV 영상에 잡혔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미국을 방문 중인 살로메 주라비쉬빌리 조지아 대통령은 뉴욕 자유의 여신상을 배경으로 찍은 영상에서 시위대에 대한 지지 의사를 표명했다.
그는 "여러분이 오늘날 자유 조지아를 대표하기에 나는 여러분과 함께한다"라며 "조지아는 유럽에서 미래를 보며 이런 미래를 빼앗을 권리를 누구에게도 주지 않을 것이다. 이 법은 어떤 형태로든 폐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라비쉬빌리 대통령은 의회에서 이 법이 통과되더라도 거부권을 행사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의회는 대통령의 거부권도 뒤집을 수 있다고 AP·로이터 통신은 전했다.
주라비쉬빌리 대통령은 대선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해 집권당 '조지아의 꿈'의 지지를 받았지만 이후 당과 거리를 두고 있다. 조지아는 2020년 총선을 기준으로 대통령중심제에서 의원내각제로 전환했다.
서방도 조지아의 민주주의를 저해할 수 있는 법안이라며 우려를 표명했다.
특히 조지아가 지난해 EU 가입을 공식 신청한 가운데 EU도 이 법이 제정되면 부정적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호세프 보렐 유럽연합(EU)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이날 성명을 내고 "이는 조지아와 조지아 국민에게 대단히 나쁜 전개"라며 "현재 형태로라면 이 법은 시민사회와 언론 기관에 오싹한 영향을 미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보렐 고위대표는 "이 법은 EU의 가치와 기준에 맞지 않는다"라며 "EU에 가입하고자 하는 조지아의 명시적 목표에 반하며 이를 최종 채택하면 우리 관계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조지아 주재 미국 대사관도 이날 성명을 내고 "오늘은 조지아의 민주주의에 어두운 날"이라며 "(조지아) 의회가 크렘린(러시아)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이 법안을 추진하는 것은 유럽 통합과 민주주의 발전을 향한 조지아 국민의 분명한 열망과 공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 법의 추진은 조지아의 전략적 파트너들과 관계에 해를 끼치고 시민들을 돕기 위해 일하는 많은 조지아 단체의 기반을 약화할 것"이라며 "이러한 과정과 법안은 집권당의 유럽·대서양 통합 약속에 의문을 제기한다"고 강조했다.
cheror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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