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학생회 "새벽에 대학측이 기습 철거"·코리아협의회 내주 대규모 규탄집회
대학 "소녀상 철거해 창고에 저장중…캠퍼스 내 영구설치 대상 아냐"
(베를린·서울=연합뉴스) 이율 특파원 박규리 기자 = 독일 카셀 주립대학이 9일(현지시간) 학생들이 세운 평화의 소녀상을 기습 철거했다.
기습 철거의 배경에는 일본 정부의 압박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됐다.
카셀대 총학생회는 이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평화의 소녀상이 오늘 새벽 우리가 모르는 사이 대학 측에 의해 철거됐다"면서 "곧 관련해 입장을 밝힐 예정"이라고 밝혔다.
캠퍼스 내 소녀상 설치를 주도한 토비아스 슈누어 전 독일 카셀대 총학생회장은 연합뉴스와 전화 통화에서 "대학 당국이 오전 7~8시께 몰래 철거한 것으로 보이는데, 너무 심하다. 깊은 충격을 받았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 학기까지만 해도여기서 세미나도 하고, 예술작업도 했는데 이 예술작품을 왜 철거해야 하는지 이해를 못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학생, 시민사회와 철거에 항의하는 활동에 나설 예정이다.
기습 철거의 배후에는 일본 측의 지속적인 철거 압박이 있었던 정황이 뚜렷하다는 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한정화 코리아협의회 대표는 "소녀상 철거를 요구하는 총장 측과 이를 반대하는 총학생회 측이 대치 중이었고 관련 협상이 이어지고 있었는데 하루아침에 일방적으로 기습 철거에 나서다니 충격적"이라며 "일본 측의 지속적인 철거 압박이 있었던 정황은 뚜렷하다"고 말했다.
소녀상 조각가 부부 김운성·김서경 작가에게 소녀상을 기증받아 카셀대 총학생회 측에 소녀상을 영구대여한 재독시민사회단체 코리아협의회는 이와 관련해 내주 카셀대에서 대규모 규탄행사에 나설 예정이다.
정의기억연대는 이날 성명을 내고 "카셀대 소녀상 설치 사흘 뒤 프랑크푸르트 일본 총영사가 카셀대 총장을 만나 '소녀상이 반일 감정을 조장해 카셀 지역의 평화를 위태롭게 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철거 요청을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후 (대학은) 업무에 지장이 생길 정도로 지속적인 일본 총영사의 방문과 극우 및 일본 시민들의 악성 메일에 시달렸고, 결국 일본 정부 측의 다양한 압박을 이기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정의기억연대는 이어 "카셀대 소녀상 철거는 일본 정부의 오만하고 뻔뻔한 역사 부정과 왜곡의 대표적 사례로, 평화의 소녀상 철거를 압박한 일본 정부를 강력히 규탄한다"고 말했다.
카셀대는 이날 웹사이트를 통해 소녀상을 가리켜 "코리아협의회의 대여 전시품이 9일 전문가들에 의해 철거됐다"라며 "협의회 측이 이를 가져갈 때까지 주의 깊은 보호 조처하에 창고에 저장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어 "카셀대에서 예술품 영구전시는 교육과 학술연구 프로젝트가 지속적으로 병행되고 설치장소에 대한 내용상 관련성이 입증되는 경우에만 학교 교수진과 총장단의 공동결정을 통해 이뤄진다"면서 "이번 동상(소녀상)은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카셀대 총학생회는 지난해 7월 학생회 본관 앞 신축공원에 평화의 소녀상을 영구설치했다. 독일 대학 캠퍼스 내 첫 설치 사례로, 총학생회는 이를 위해 부지 사용에 대해 대학 측의 허가를 받았고 학생 의회에서 소녀상 영구존치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카셀대 총학생회가 소녀상을 세우고 싶다는 뜻을 밝힌 것은 지난해 초다. 베를린에 평화의 소녀상을 세운 코리아협의회에 연락해 5년마다 열리는 세계적인 국제현대미술전시회 카셀 도큐멘타에 맞춰 소녀상을 설치하고 싶다고 밝힌 것이다.
슈누어 당시 총학생회장은 베를린 소녀상을 철거하려고 시도한 일본 정부의 태도가 소녀상을 세우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
그는 위안부 동원을 자인하지 않고 공식적으로 부정하는 일본의 태도에 대해 "항상 자국의 역사를 비판적으로 인식한다면 역사적 과오를 반복하지 않고, 이로 인해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yulsid@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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