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SJ, 소식통 인용 보도…"성사된다면 3국 정상에 역사적 치적"
(서울=연합뉴스) 임화섭 기자 = 사우디아라비아가 이스라엘과 관계를 정상화하는 조건으로 우라늄 농축 기술과 핵연료 기술 등 민간 핵 계획을 지원해 달라고 미국에 요구하고 있다고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이 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WSJ은 만약 아랍권 최강국이며 이슬람 최고 성지인 사우디와 이스라엘이 공식 외교관계를 수립하고 관계를 정상화한다면 중동지역에 정치적 지각변동이 일어날 것이라며 이렇게 전했다.
사우디, 미국, 이스라엘은 이란에 맞서서 안보를 강화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는 공통점이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사우디는 아울러 미국산 무기 구입 시 제한 완화를 포함해 미국 측에 강한 안전보장 조치를 추가로 요구하고 있다고 WSJ은 전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이스라엘과 관계를 정상화하기 위한 전제조건 중 하나로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건설을 꼽아 왔으나, 최근 막후 협상에서는 이 부분을 강조하지 않고 있다고 이스라엘과 미국 측 관계자들은 전했다.
WSJ은 '미국 국가안보를 위한 유대인 연구소'(JINSA) 존 해나 연구위원을 인용해 사우디 측이 우라늄 농축 기술과 자체적 핵연료 생산 시스템 개발에 도움을 달라고 미국 측에 요구하고 있다고 전했다. 해나는 2005∼2009년 딕 체니 당시 부통령의 국가안보 보좌관을 지냈다.
미국과 이스라엘 정부 관계자들은 사우디의 이런 요구에 대해 핵무기 개발에 전용될 가능성이 있고 이란과의 무기 경쟁을 부추길 것이라고 우려한다.
이스라엘 텔아비브 소재 국가안보연구소에서 이스라엘-사우디 관계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요엘 구잔스키 선임연구위원은 이스라엘 입장에서 핵 이슈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과연 평화의 대가로 지불할만한가에 대해 이스라엘인들이 토론해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수십년간 거론만 돼 온 사우디-이스라엘 수교가 만약 성사될 경우 미국을 포함해 3개국의 지도자들은 이를 역사적 치적으로 내세울 수 있게 된다.
이스라엘은 2020년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중재로 아랍에미리트(UAE), 바레인, 모로코, 수단 등 아랍권 4개국과 '아브라함 협약'을 맺고 외교 관계를 정상화하기로 합의했으며, 조 바이든 현 미국 대통령도 이에 대한 전임자의 정책을 계승하고 발전시키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다만 미국에 대한 사우디의 안전보장 요구와 핵 계획 지원 요구가 매우 큰 장애물이 되고 있다.
일단 일부 미국 의원들이 이런 조치에 반대할 공산이 크고, 사우디의 입장에서도 아랍권 내의 반발을 사고 이란과의 긴장이 더욱 고조될 우려가 있다.
게다가 최근에는 여러모로 여건이 좋지 않다.
미국과 사우디 사이에 불신이 쌓여 있을 뿐만 아니라 팔레스타인의 상황이 악화하고 있고 이스라엘에서도 반정부 여론이 일고 있다.
미국 정보당국은 2018년 10월 자말 카슈끄지 살해를 지시한 배후가 바로 사우디 실권자인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 겸 총리라는 결론을 내렸으며, 2021년 2월에는 이런 결론을 공식 보고서로 공개하기까지 했다.
사우디는 작년 하반기에 미국 정부의 강력한 요청을 거부하고 산유국들의 석유 감산 결정을 주도해 러시아에 도움을 줬다.
또 요르단강 서안을 점령 중인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인들 사이의 충돌이 최근 20년간 최악으로 심해졌고,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추진 중인 이른바 '사법개혁'이 민주주의를 파괴하려는 공작이라는 비판이 일면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일어나고 있다.
대니얼 셔피로 전(前) 주(駐)이스라엘 미국 대사는 WSJ에 사우디-이스라엘 관계정상화에 대해 "매우 자르기 어려운 매듭"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의 중재로 이뤄지는 이스라엘-사우디아라비아 관계정상화는 3개국 모두의 이해에 부합한다"며 "하지만 쉬운 일이라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사우디의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는 개인적으로 감정이 나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현직에 있을 때 이스라엘과 수교를 굳이 서두르고 싶어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미국 뉴욕타임스(NYT) 등 일부 매체에서 나온다. 사우디-이스라엘 수교가 바이든의 치적이 되는 것을 바라지 않으리라는 관측이다.
limhwasop@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