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주의 펀드, 가처분·여론전 등 막판 전략 다듬기
소액주주도 연대해 '경영진 교체·분할 이슈' 등에 목소리
(서울=연합뉴스) 배영경 홍유담 기자 = 주주 활동의 최후 격전지가 될 주주총회 시즌이 도래하면서 행동주의 펀드와 소액주주들이 막판 전열 재정비에 나섰다.
12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달 주총 때 주주제안을 안건으로 상정한 12월 결산법인 상장사는 지난 9일 기준 32개사에 달해 작년 같은 기간(16개사) 대비 곱절로 늘었다.
적극적으로 주주활동을 벌이는 주요 행동주의 펀드도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플래쉬라이트 캐피탈 파트너스(FCP)·트러스톤자산운용 등 10곳에 가깝다.
이들은 법원 가처분 신청 등으로 '초강수'를 두거나, 반대로 기업과 '절충점'을 모색하며 가시적 성과 거두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소액주주들 역시 요구사항 관철을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세를 결집하며 목소리를 키우는 중이다.
◇ '초강수·절충점' 오가며 전열 가다듬는 펀드
최근 행동주의 펀드들이 주주제안을 주총 안건으로 상정하기 위해 법원의 힘을 빌리는 사례가 늘었고, 일부는 성과를 거뒀다.
가령 FCP와 밸류파트너스자산운용은 각각 KT&G와 KISCO홀딩스[001940]를 대상으로 자기주식 취득 의안 상정 가처분 신청을 내 법원의 인용 결정을 받아냈다.
이에 KT&G와 KISCO홀딩스는 법원의 결정에 따라 이들 펀드의 주주제안을 자사 주총 안건에 추가해 주총 소집 공고를 새로 공시한 상태다.
안다자산운용도 KT&G를 대상으로 인삼공사 인적분할 의안 상정 가처분 신청을 낸 상태다.
공방을 이어가며 여론전의 화력을 키우는 사례도 있다.
얼라인은 앞서 JB금융지주[175330]에 '1주당 900원 현금배당'과 '김기석 후보자 사외이사 선임 안건'을 주주제안으로 제시했으나 JB금융지주가 반대 입장을 밝히자 즉각 입장문을 내 조목조목 반박했다. 조만간 유튜브 채널에 동영상을 올려 여론전을 강화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초강수 대신 기업과 절충점을 찾으며 투쟁의 실효성을 높이려는 경우도 있다.
FCP는 애초 KT&G를 상대로 인삼공사 인적분할에 대해서도 의안 상정 가처분을 신청했으나, KT&G가 자신들이 추천한 후보자의 사외이사·감사위원 선임 안건 등을 주총 안건으로 상정하자 가처분 신청을 취하했다.
추천한 후보가 이사회에 진출하면 인삼공사 분리상장 추진도 속도가 날 것으로 판단, 일단 한 걸음 물러나 이쪽에 화력을 집중하기로 전략을 수정한 것이다.
대신 KT&G가 경쟁사 필립모리스 인터내셔널과 맺은 궐련형 전자담배 수출 위탁 장기계약의 정당성을 확인하기 위한 내용증명을 보내 측면 압박을 가했다.
트러스톤자산운용도 최근 BYC[001460]가 자신들이 '기타 비상무이사 겸 감사위원'으로 추천했던 인물을 '감사위원이 되는 사외이사 후보'로 변경해 주총 안건으로 올린 것을 수용했다.
트러스톤 관계자는 "BYC가 올린 주총 안건은 최선책이 아닌 차선책이지만 가장 중요한 건 우리 측 후보자가 감사위원으로 선임되는 것"이라며 "소액주주의 힘을 결집해 목표를 관철한 뒤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데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주총에 상정된 주주제안 안건 중 이사·감사·감사위원 선임 관련이 20건으로 가장 많았고 그 뒤를 현금·주식배당(19건), 정관 변경(13건), 주식 취득·소각·처분(6건) 등이 이었다.
◇ '펀드 구심점 없이도 뭉친다'…소액주주들도 반격 준비
행동주의 펀드와 같은 특별한 구심점 없이도 소액주주들이 주총을 앞두고 자발적으로 세 결집에 나서는 모습도 목격된다.
지난달 25일 개설된 KT[030200] 주주 모임 커뮤니티에는 2주 만에 회원 1천명 이상이 가입했다. 이 커뮤니티는 자영업자인 KT 일반주주 A씨가 소액주주들의 목소리를 모으기 위해 만든 것이다.
이들은 KT 차기 대표 선임과 관련해 정치권이 부당한 압력을 가해 기업가치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주장하며 이번 주총에 목소리를 낼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A씨는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지난 10일 기준 커뮤니티에 집단행동 동참 의사를 밝힌 소액주주는 1천여 명이고 이들이 가진 주식 수는 약 262만 주"라며 "이는 KT 전체 주식의 1%를 넘는 수치"라고 말했다.
이어 "의결권 위임, 전자투표 단체 참여 등 소액주주들이 뭉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며 "중장기적으로는 주주제안을 하는 것이 목표고 전문 변호사를 선임해 법적으로 대응할 방법이 있는지도 검토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DB하이텍[000990] 소액주주 연대의 경우 지난 9일 반도체 설계사업(팹리스)을 자회사로 분사하는 물적분할에 반대하며 이 회사의 이사회에 내용증명을 보냈다.
이들은 향후 신설 법인의 상장 가능성을 열어둔 정관 문구를 삭제할 것 등을 요구하며 오는 14일까지 공식 답변하라고 압박했다.
이처럼 소액주주들의 주총 참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이를 지원하는 플랫폼도 주목받고 있다.
주주 행동주의 플랫폼 '비사이드'에는 현재 10개 기업을 대상으로 한 주주행동 캠페인 페이지가 열려 있다. 지난해 3월 3개 기업에 그쳤던 것이 1년 만에 3배 이상으로 급증했다.
얼라인·트러스톤 등 행동주의 펀드들이 페이지 개설을 요청한 경우가 대다수지만, KISCO홀딩스 건처럼 소액주주 연대가 주도한 사례도 있다.
비사이드는 SM엔터테인먼트[041510]와 JB금융지주, 유니온커뮤니티[203450]에 대해서는 의결권 위임 서비스도 제공 중이다. 다음 주에는 의결권 위임 가능 기간이 도래하는 기업이 많아지면서 6∼7곳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보다 애플리케이션 다운로드 수는 약 2배, 홈페이지 방문자 수는 약 3배 이상 증가했다.
임성철 비사이드코리아 대표는 "지난해 주총 시즌 때는 약 2천200명이 비사이드를 통해 의결권을 위임했는데, 올해는 지난해보다 훨씬 많은 인원이 참여 중"이라며 "주주 행동주의 전략이 성공하려면 일반 소액주주들의 참여와 공론화가 중요한 열쇠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ykbae@yna.co.kr, ydh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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