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최측 95개 지역에서 50만명 참여 추산…현지 언론 30만 추정
야권 지도자 라피드 "이란-사우디 관계 회복에도 정부는 민주주의 파괴만"
극우 국가안보장관, 시위 소극대응 텔아비브 경찰청장 전보 압박 논란
(카이로=연합뉴스) 김상훈 특파원 = 10주째로 접어든 이스라엘 '사법부 무력화' 저항 시위가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반정부 집회 참여 인원을 기록하는 등 날로 규모와 강도가 확대되고 있다고 일간 하레츠 등 현지 언론이 12일(이하 현지시간) 보도했다.
시위 주최 측은 전날 저녁 이스라엘 95개 지역에서 열린 '사법 정비'(Judicial overhaul) 저항 집회에 약 50만명의 시민이 참석했다고 밝혔다.
지역별로는 텔아비브에서 24만명이 운집했고, 중부 하이파에 5만명, 예루살렘 대통령궁 앞에 2만명, 제1여당인 리쿠드당 지지세가 강한 남부 도시 비어셰바에도 1만명가량이 모여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 정부의 사법부 무력화 시도를 성토했다.
비어셰바 시위에 참여한 야권 지도자인 야이르 라피드 전 총리는 연설을 통해 "이스라엘이 역사상 가장 강력한 위기를 맞고 있다. 테러가 빈발하고 경제는 곤두박질치고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이스라엘의 앙숙인 이란이 사우디아라비아와 관계를 회복하기로 한 것을 지적하면서 "그런데도 이 정부는 이스라엘의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데만 정신이 팔렸다"고 성토했다.
중부 도시 네탄야에서는 수백명의 여성들이 반정부 시위 소극 대응을 이유로 전보 조처된 아미차이 에셰드 텔아비브 경찰청장을 지지하는 침묵시위를 벌였다.
극우 성향의 이타마르 벤-그비르 장관은 지난 9일 열린 '저항의 날' 시위 당시 텔아비브 경찰이 강경하게 대응하지 않았다고 불만을 토로했고, 이후 이스라엘 경찰청장은 에셰드를 경찰훈련 담당자로 전보 조처했다.
그러나 이스라엘 검찰총장이 전보 조처가 정당했는지를 조사하겠다고 밝히고, 코비 샤브타이 경찰청장이 자신의 전보 명령이 실수라고 인정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침묵시위에 나선 여성들은 페미니즘에 기반한 디스토피아 소설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 '핸드메이즈 테일'(The Handmaid's Tale)의 캐릭터를 패러디해 붉은 망토를 두르고 흰 모자를 썼다.
텔아비브 시위에 참여한 시민들은 경찰의 저지선을 뚫고 아얄론 고속도로를 점거했다.
성경 속 이스라엘의 영웅인 모세 복장을 하고 십계명 표지판을 든 채 텔아비브 시위에 참여한 한 여성은 "상황을 변화시키길 희망하며 집회에 참석했다"고 말했다.
앞서 시위 주최 측은 지난 9일을 '저항의 날'로 지정하고 벤구리온 국제공항으로 향하는 도로에서 차량 시위를 벌이며 네타냐후 총리의 이탈리아 방문을 방해했다. 이 때문에 네타냐후 총리는 관저에서 공항까지 차량이 아닌 헬기를 이용해 이동해야 했다.
주최 측은 이탈리아 방문을 마치고 돌아온 네타냐후 총리가 독일 베를린을 방문할 예정인 오는 15일 같은 방식의 시위를 시도할 예정이며, 오는 16일은 '확대된 저항의 날'로 지정해 더 강력한 반정부 시위를 계획하고 있다.
주최 측은 성명을 통해 "앞으로 몇 주는 이스라엘의 민주주의를 파괴 시도자들로부터 지키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시기"라며 "모든 국민은 이스라엘 국가를 지키기 위해 나서달라"고 촉구했다.
네타냐후 총리가 주도하는 이스라엘 우파 연정은 최고 법원인 대법원의 기능을 축소하는 내용의 입법을 추진 중이다.
연성헌법인 '기본법'에 반하는 의회의 입법을 대법원이 사법심사를 통해 막지 못하도록 하고, 여당이 법관 인사를 담당하는 위원회를 조종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야당과 법조계, 시민단체 등은 이를 '사법 쿠데타'로 규정하고 반대 집회를 이어오고 있다.
meola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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