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화폐 사업 비중 커…"예치금 4분의 1이 가상화폐 부문"
(서울=연합뉴스) 김동호 차병섭 기자 =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붕괴 여파 속에 이틀 만에 또 다른 미국 은행 시그니처은행이 폐쇄됐다고 로이터·블룸버그통신이 1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미국 금융 중심지 뉴욕주(州)의 규제당국 금융서비스부(DFS)는 이날 뉴욕주 소재 시그니처은행을 인수하고 연방예금보험공사(FDIC)를 파산관재인으로 임명했다고 밝혔다.
당국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시그니처은행의 총자산은 1천103억6천만 달러(약 146조원), 예치금은 885억9천만 달러(약 117조원) 규모다.
시그니처은행은 미국 내에서 뉴욕·코네티컷·캘리포니아·네바다·노스캐롤라이나 등에서 영업해온 상업은행으로, 사업 분야는 상업용 부동산과 디지털자산 은행 업무 등이다.
시그니처은행이 폐쇄에 직면하게 된 자세한 상황은 아직 알려지지 않은 상태다.
다만, 시그니처은행은 지난주 청산한 실버게이트 은행과 함께 가상화폐 거래 주요 은행으로 꼽혀 왔다. 이들 은행은 가상화폐 회사 간 실시간 자금 이체를 용이하게 하는 결제 네트워크를 제공한다.
이에 따라 이 은행은 다른 금융기관에 비해 예치금 가운데 가상화폐 부문 비중이 매우 큰 것으로 알려졌다.
로이터에 따르면 지난해 9월 기준 시그니처은행 예치금의 4분의 1 가까이가 가상화폐 부문에서 나왔으며, 은행 측은 가상화폐 관련 예치금을 80억 달러(약 10조원) 줄이겠다고 지난해 말 발표한 바 있다.
앞서 지난 8일 실버게이트가 대규모 인출 사태(뱅크런) 우려 끝에 결국 청산하면서 작년 한국산 코인 테라USD·루나 붕괴 사태와 대형 가상화폐 거래소 FTX의 파산에 이어 가상화폐 업계 전반이 다시 흔들리고 있다.
여기에 SVB 파산의 충격이 겹치면서 시그니처은행도 큰 타격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미 당국은 SVB 파산이 다른 금융기관들로 전염되는 것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미 재무부를 비롯한 은행 감독당국은 이날 공동성명을 통해 SVB 고객들에게 적용된 것과 유사하게 '시스템적 위험에 따른 예외'에 따라 시그니처은행 고객들도 예치금을 인출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발표했다.
또 시그니처은행의 모든 예금자 자산을 보장하겠다면서도 "SVB 해결안과 마찬가지로 손실을 납세자가 감당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주주와 일부 무담보 채권 보유자들은 보호 대상이 아니다.
뉴욕 DFS는 "모든 규제대상 기관들과 긴밀히 접촉 중"이라면서 "소비자 보호와 규제대상 기관의 건전성 확보, 세계 금융 시스템의 안정성 수호를 위해 다른 주 및 연방 규제당국들과 긴밀히 협력 중"이라고 설명했다.
시그니처은행 측은 아직 이번 사안에 대해 입장을 밝히지 않은 상태다.
앞서 지난 10일 캘리포니아주 금융보호혁신국은 불충분한 유동성과 지급불능을 이유로 미국 서부 스타트업들의 자금원 역할을 해오던 실리콘밸리은행을 폐쇄했다.
이에 시그니처은행과 퍼스트리퍼블릭 은행 등의 주가가 당일 20% 넘게 폭락하는 등 후폭풍이 확산하고 있다.
한편 시그니처은행은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집안과 오랫동안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사업자금을 제공해왔지만, 2021년 의회 폭동 이후 관계를 끊고 트럼프 퇴진을 요구한 바 있다고 로이터는 덧붙였다.
d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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