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오른 정기주총 시즌…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인적분할'

입력 2023-03-14 06:11  

막오른 정기주총 시즌…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인적분할'
"'자사주 마법'으로 대주주 지배력만 강화" 소액주주 우려
"인적분할로 기업 재평가…현실적 배경 고려해야" 반론도



(서울=연합뉴스) 김기훈 기자 = 3월 정기 주주총회 시즌이 본격 개막하면서 주요 기업의 인적분할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최근 현대백화점[069960] 임시 주총에서 인적분할 안건이 부결되면서 인적분할을 앞둔 다른 기업에서도 소액 주주를 중심으로 찬반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인적분할 과정에서 대주주 지배력이 높아지는 반면, 소액 주주 지분은 희석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적분할을 무조건 부정적으로 바라봐서는 안 되며 배경과 목적을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 현대백화점 인적분할 안건 부결에 OCI 등 다른 기업도 '긴장'
14일 재계에 따르면 인적분할을 통한 지주체제 개편을 계획하고 있는 기업으로는 OCI, 대한제강[084010], 동국제강[001230], 이수화학[005950] 등이 있다.
인적분할은 물적분할과 비교했을 때 주주가치 훼손에 대한 우려가 상대적으로 적다.
특정 사업부를 떼어 자회사를 설립하고, 모회사가 신설회사의 지분을 100% 갖는 물적분할과 달리 인적분할은 기존 주주가 지분율대로 신설법인의 주식을 나눠 갖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특히 LG에너지솔루션[373220]의 분리 상장 이후 물적분할을 반대하는 소액주주들의 움직임이 거세지면서 물적분할 대신 인적분할을 선택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문제는 인적분할 과정에서 '자사주의 마법'으로 인해 대주주의 지배력이 강화된다는 부정적 여론 역시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자사주의 마법이란 자사주를 보유한 기업이 인적분할을 통해 지주회사로 전환할 때, 기존회사가 보유한 자사주에 신설회사의 신주를 배정함으로써 지배주주의 지배력이 강화되는 현상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자사주는 의결권이 없지만, 인적분할 뒤 지주회사는 신설되는 자회사에서 의결권 있는 신주로 자사주 몫만큼을 배정받는다
지배주주 입장에선 추가로 자금을 투입하지 않고도 지배력을 강화할 수 있는 셈이다. 소액주주의 지분가치는 그만큼 희석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자사주의 마법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아지면서 인적분할에 제동이 걸린 사례도 나왔다.
지난달 열린 현대백화점 임시주주총회에서 인적분할 안건이 부결됐다.
인적분할로 정지선 회장의 현대백화점홀딩스 지배력이 높아지는 것은 물론이고, 현대백화점 자사주가 홀딩스로 출자되면서 의결권 있는 백화점 주식도 간접 확보하게 돼 대주주의 지배력만 강화된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 OCI "자사주 보유지분 미미…자사주 마법 우려 지나쳐"
일각에서는 기업들이 인적분할을 추진하는 목적이나 배경을 좀 더 세심히 살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회사마다 처한 상황이 다르고 인적분할을 통한 사업구조 재편이 시급한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OCI는 이달 22일 열리는 주주총회에서 인적분할 안건을 상정한다.
지난해 11월 발표한 지배구조 개편안에 따른 조처로 안건이 주총을 통과하면 OCI는 지주회사인 OCI홀딩스(존속법인)와 OCI(신설법인)로 나뉘게 된다.
OCI의 사업 가운데 태양광용 폴리실리콘 사업은 지주회사가 맡고, 사업회사는 반도체와 배터리 소재 등 첨단 화학소재 사업을 가져가게 된다.
인적 분할을 통해 폴리실리콘 사업에 가려져 있던 기존 화학사업의 가치와 기업 가치를 재평가받고, 사업 간 분리를 통해 전문적 의사 결정과 자원의 효율적 배분을 노린다는 게 회사 측의 구상이다.
OCI 관계자는 "전체 매출의 약 22%를 차지하는 폴리실리콘 사업이 마치 OCI 사업의 전부인 양 과잉 대표되고 있다"며 "시황에 따른 실적 부침이 큰 폴리실리콘 사업을 지주회사가 맡고, 인적분할을 통해 그동안 부각되지 않았던 화학사업이 재평가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증권가에서도 OCI의 인적분할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강동진 현대차증권[001500] 연구원은 "인적분할을 통해 그간 관심을 받지 못했던 사업부 가치가 부각될 전망"이라며 "사업회사 분할 상장 후 양사 합산 시가총액은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진호 미래에셋증권[006800] 연구원도 OCI의 인적분할에 대해 "각자 사업 연관성이 높은 부문들을 묶어 인적분할 후 역량을 집중해 디스카운트(저평가)를 해소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평가했다.
또 자사주의 마법에 대한 우려가 지나치다는 목소리도 있다.
금감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현재 인적분할을 계획하고 있는 회사들이 보유한 자사주 지분율은 대한제강 24.67%, 조선내화[000480] 20%, 동국제강은 4.12% 등이다. OCI의 자사주 지분율은 1.26%에 불과하다.
OCI 관계자는 "주주가치 제고 차원에서 취득한 자사주 30만주를 보유하고 있다"며 "자사주 지분율이 1.26%로 자사주의 마법 효과를 논하기에는 미미한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인적분할의 필요성을 좀 더 차분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권재열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인적분할은 대주주의 지배력을 높이기 위해 이용되는 나쁜 수단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기업들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됐다"며 "기업이 분할을 하려는 여러 가지 목적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권 교수는 "분할을 하게 되면 기업 가치를 다시금 평가받고, 특정 사업 부분을 분사함에 따라 자금 조달이 더 용이해질 수도 있다"며 "기업이 인적분할을 위해 자사주를 취득했다고 해서 이를 마법의 재료로만 인식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kihu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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