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우크라 전쟁으로 '중립국' 위상 시험대 올라

입력 2023-03-13 17:01  

스위스, 우크라 전쟁으로 '중립국' 위상 시험대 올라
무기수출은 제약, 러시아 자산 동결은 극히 일부만
'어정쩡' 미온적 대러 제재에 서방도 러시아도 불만


(서울=연합뉴스) 김성진 기자 =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중립국으로써 스위스의 위상이 시험대에 오르고 있다고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가 1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러시아군과 참호전을 벌이는 우크라이나가 스위스에서 생산해 유럽 국가들로 수출한 탄약과 레오파르트2 주력 전차를 절실히 필요로 하는 상황에서 스위스의 중립국 지위가 뜨거운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스위스는 자국산 무기를 수입한 국가가 우크라이나처럼 전쟁 중인 국가로 무기를 재수출하는 것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세계 여러 나라를 동등한 조건으로 대접하도록 만들어진 각종 규제 속에 스위스 내부에서조차 이해관계가 엇갈리고 있다.
먼저 스위스 무기 제조업자들은 계속 법률적 제약으로 무기를 수출하지 못할 경우 주요 고객인 서구 국가들을 잃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올리버 디겔만 취리히대 국제법 교수는 "무기를 수출하는 중립국 국가라는 점이 스위스를 딜레마에 빠뜨렸다"며 스위스는 한편으로 무기를 수출하는 사업을 하고 싶고, 다른 한편으로는 무기를 통제해 '굿가이'(선한 중립국)가 되고 싶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스위스는 지난 수 세기 동안 중립성을 고수하며 두차례의 세계대전도 헤쳐왔다. 현재 스위스 국민 870만명 중 90%가 중립국 지위를 지지한다.
이런 중립국 지위 덕분에 스위스 제네바에 유엔의 유럽본부, 국제적십자위원회(ICRC) 본부를 유치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오늘날 서방 국가들은 스위스가 무기 수출과 대러 제재에 주저하는 동기를 이상주의라기보다는 사업 때문이라고 본다. 스위스는 자국내 러시아 자산 약 493억 달러(약 65조원) 가운데 단 80억 달러(약 10조원) 정도만 동결했다.
은행 비밀주의와 돈세탁 창구 역할로 악명이 높은 스위스는 세계 최대 역외 재산 중심지이다. 글로벌 역외 재산의 4분의 1이 스위스에 있으며, 이 가운데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가까운 '올리가르히'(신흥재벌) 다수도 포함돼 있다.

한 고위급 서방 관리는 스위스가 어정쩡하게 현 상태를 유지한 탓에 "경제적 혜택의 중립성"을 추구하고 있다는 인상을 서방 외교관들에 남기고 있다고 꼬집었다.
베른대에서 스위스 중립성 역사를 연구하는 사카 잘라는 스위스가 수개월간 무기수출을 꺼려온 상황을 두고 "EU 전체가 짜증이 난 상태이고 미국인도 불편해한다"면서 "러시아인도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고 전했다. 러시아는 중립국인 스위스가 대러 제재에 동참했다는 것을 비판한다.
역사적으로 스위스 중립성은 나폴레옹 전쟁 이후 유럽 열강이 지역 강대국 간 완충 국가들 두자고 합의하면서 공식화됐다. 스위스 중립국 지위는 1907년 헤이그 협약으로 더욱더 성문화됐다.
스위스 중립의 성격은 이른바 '무장 중립'으로 단지 중립성뿐 아니라 중립을 보호할 수 있는 능력을 유지하는 데 있다. 다만 스위스 국방산업은 고용인원 1만4천명으로 수출에서 활로를 찾고 있다고 보수적인 스위스 국민당 관계자가 전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전을 계기로 유럽인들과 주요 방산업체는 스위스 안에서 무기나 핵심 부품을 제조하는 것을 갈수록 경계하고 있다. 실제로 스위스 회사를 가진 독일 방산업체 라인메탈은 독일 내에 무기 공장을 둘 계획이다.
이 때문에 올 초 스위스의 친(親)재계 정당인 자유민주당은 스위스와 민주가치를 공유하는 나라들에는 무기 재수출을 허용하자는 목소리를 냈다. 그러나 의회 내 최대 정당으로 전통적으로 중립을 확고히 옹호하는 우파 스위스 국민당이 지난주 이 법안을 거부했다.
서방 나라들은 스위스가 수십년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들에 둘러싸여 사실상 보호받는 혜택을 누렸으나 이제 그 나라들을 도우려고 하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하지만 스위스 헌법상 중립국 위치를 더 엄격히 해석하려는 것에 관해 국민투표를 하자는 입장인 발터 보브만 의원은 "선택지는 두 개뿐이다. 절반만 임신할 수 있느냐. 임신이냐 아니냐만 있을 수 있다"면서 중립이든 나토 같은 동맹이든 둘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sungji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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