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커스, 핵비확산 허점 조항 지목되던 '제14항' 최초 활용
전문가 "다른 국가들이 오커스의 '선례' 남용할까 우려"
(서울=연합뉴스) 전명훈 기자 = 대(對)중국 안보협의체 오커스(AUKUS·미국·영국·호주)가 핵 비무장국인 호주에 핵추진 잠수함을 공급한다는 사실을 공식화하면서 핵확산금지조약(NPT)의 '허점'이 오남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부각되고 있다.
오커스 3국 정상은 13일(현지시간) 핵잠수함을 호주에 조기 공급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미국은 2030년대 초에 버지니아급 잠수함 3척을 호주에 판매하고, 필요하면 2척을 추가로 제공하기로 했다.
호주는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은 국가다. NPT는 핵무장국이 비핵무장 국가에 군사용 핵물질을 이양하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제한한다.
그런데 핵잠수함에 쓰이는 원자로와 핵 원료 역시 군사용 핵물질이다. 즉, NPT의 취지만 따른다면 호주는 핵잠수함 도입이 불가능했다.
그러나 오커스는 NPT의 세부 조항 속에 숨겨진 '구멍'을 활용했다.
NPT에 가입한 핵 비무장국은 일정 기간 내에 유엔의 핵 감독기관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전면안전조치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 이 협정은 핵 비무장국이 핵물질을 무기로 전용하지 않도록 IAEA의 감시망인 '전면안전조치'를 받아들인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IAEA의 감시 범위와 방식 등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전면안전조치협정 모델'(INFCIRC)의 14항(Paragraph 14)에 따르면 해군 함정 추진용으로 쓰이는 '비폭발성·군사용 핵물질'은 IAEA의 '전면안전조치'에서 예외가 될 수 있다.
군축 전문가들은 이 조항이 NPT의 허점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해왔다. 만에 하나 악의를 가진 국가가 이 조항을 악용한다면, 국제사회의 감시망을 무시한 채 핵무기로 활용될 수 있는 고농축 우라늄·플루토늄 등을 비핵무장 국가로 넘기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이번 잠수함 계약은 이 허점을 정면으로 활용한 최초 사례라고 영국 일간 가디언은 전했다.
다만 가디언에 따르면 미국·영국·호주는 핵잠수함 공급 계약을 추진하면서 우려를 불식하기 위한 각종 안전 조치를 이행했다고 한다.
호주는 자국 영토 내에 핵잠수함 훈련용 원자로를 배치하지 않기로 했다. 필요한 훈련은 영국·미국 등으로 가서 받기로 했다.
호주는 또한 잠수함에서 쓰인 '사용 후 핵연료'를 농축하거나 재처리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미국·영국은 잠수함에 필요한 핵물질을 아예 용접된 형태로 제공하기로 했다. 물질을 재사용하지 못하도록 원천 봉쇄한 것이다.
미국 정부 고위 관계자는 "(핵잠수함 공급)계획의 첫날부터, 혹은 논의 과정에서도 우리는 (핵) 비확산을 최우선시했다"고 주장했다.
라파엘 그로시 IAEA 사무총장도 "미국, 영국, 호주가 최상위의 비확산·안전조치 기준을 확실히 충족하는 데 전력을 다하리라 믿는다"며 "지금까지 3국이 보여준 참여와 투명성은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그러나 오커스가 하나의 선례가 되면 앞으로 비슷한 사례가 우후죽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핵확산 문제 전문가인 제임스 액턴 카네기국제평화재단 국장은 "가장 큰 문제는 오커스가 언제나 '선례'가 된다는 점"이라며 "두려운 것은 호주가 핵연료를 오남용할 거라는 것이 아니다. 다른 국가들이 IAEA의 전면안전조치를 회피하면서 오커스의 선례를 남용할 수 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한편 유엔 중국 대표부는 오커스의 이번 발표에 대해 "이중잣대의 표본이다. NPT의 의도를 명백하게 위반한 것"이라며 "핵 확산 위협을 크게 증대시키는 뻔뻔스러운 행위다. 군비 증강 경쟁을 부추기고 역내 안전성과 평화를 훼손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id@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