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정부가 추진중인 '주 52시간제'의 대대적 개편 방안이 재검토에 들어가게 됐다. 윤석열 대통령은 14일 고용노동부의 근로시간 제도 개편 방안에 대해 국민 소통 노력이 부족했다면서 보완검토를 지시했다. 앞서 노동부는 현행 주 52시간제를 대대적으로 개편, '일이 많을 때는 일주일에 최대 69시간까지 몰아서 일하고, 일이 적을 때는 푹 쉴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의 제도 개편방안을 지난 6일 내놓았다. 이에 대해 각계 우려가 제기되자 일단 브레이크가 걸린 셈이다. 노동부는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보완 방안을 강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일각에선 제도 개편안이 백지화·폐기되는 것 아니냐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고 한다. 전체 근로자가 이해당사자인 매우 중요한 제도 개편 방안 마련 과정에서, 처음부터 좀 더 충분한 여론 수렴과 설득 노력이 펼쳐졌어야 했다는 비판이 나와도 정부는 할 말 없게 됐다.
노동부의 근로시간 제도개편안의 핵심은 '몰아서 일하고 몰아서 쉰다'는 개념으로 볼 수 있다. 유연 또는 선택 근로제에 대해 정부와 업계는 4차산업 시대 기업의 요구이자 20, 30대를 뜻하는 '엠제트(MZ) 세대'의 절반 이상이 선호하는 근로방식이라면서 이를 뒷받침하는 여론조사 결과를 제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관련 통계 수치가 아무리 사실에 부합한다고 쳐도 근로자들의 의사를 온전하게 담아낼 수는 없는 법이다. MZ의 절반 이상이 선택근로를 원한다고 해서 이것이 법개정에 당위성을 부여할 수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개편안이 최대 '주 69시간' 일할 수 있도록 할 경우 노사 협의를 거치도록 했다지만 이 또한 현실을 모르고 하는 소리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2021년 현재 노조조직률은 14.2%로, 30~99명 사업장은 1.6%, 30명 미만은 0.2%에 불과하다. 최대 주 69시간 근무가 가능토록 법이 바뀔 경우 중소기업의 노동 여건만 악화시킬 것이란 우려가 이래서 나오는 것이다.
개편안이 선진국의 근로시간 단축 흐름에 맞는지도 고려해볼 문제다. 유럽과 미국은 물론이고 노동강도에서 한국과 선두를 다툰다는 일본도 기업들이 앞다퉈 주 4일제를 도입하고 있다. 더구나 우리의 직장문화는 여전히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 주 52시간제 도입과 비대면 근무 확산으로 인해 많이 개선됐다고 하지만 직급에 따른 위계질서가 작동하고 같은 일을 해도 정규직이 비정규직을 하대하는 전근대적 풍토는 바뀌지 않고 있다.
윤 대통령은 개편안 보완을 지시하면서 "특히 MZ 세대의 의견을 면밀히 청취하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노동부는 충분히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에 따라 이해관계가 다르고, 남성과 여성은 물론 여성 간에도 자녀 보육 여부에 따라 차이가 크다. 앞서 교육부가 지난해 8월 초등학교 입학 연령을 만 5세로 낮춘 학제 개편안을 불쑥 꺼냈다가 역풍을 맞고 철회하고 장관이 사퇴하는 일이 있었던 점을 잊지 말기 바란다. 노동부는 공론화 과정을 거쳤다고 하지만 중요한 정책 결정 과정에서 부족한 점은 무엇인지 스스로 되돌아봐야 한다. 앞으로 이뤄질 보완 검토는 원점에서 출발한다는 각오로 폭넓게 이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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