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독한 환경서도 죽지 않고 휴면…눈에 보이지 않는 인간의 환경 영향 제시
(서울=연합뉴스) 엄남석 기자 = 지구 최고봉인 에베레스트산 등정의 마지막 캠프가 설치되는 해발 8천m 가까운 토양에 인간이 흘린 미생물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에베레스트와 세계 제4봉인 로체산 사이 수직 능선인 사우스콜은 강한 바람으로 눈이 쌓이지 않아 에베레스트 등정의 마지막 캠프가 차려지는 곳으로, 매년 수백명의 산악인이 찾는다. 이런 높은 고도의 혹독한 환경에서 인간이 남기고 간 내한성 미생물이 죽지 않고 언 상태로 수십, 수백 년간 휴면 상태에 있다는 것이다.
이는 인간이 미치는 눈에 보이지 않는 환경적 영향을 나타낼 뿐만 아니라 지구나 다른 행성에서 생명체가 서식할 수 있는 극한 환경에 대한 이해를 넓혀주는 결과로 제시됐다.
미국 볼더 콜로라도대학에 따르면 이 대학 생태·진화생물학 교수 스티브 슈미트 박사가 이끄는 연구팀은 사우스콜 캠프 주변에서 수거한 토양의 미생물 유전자를 분석한 결과를 냉지(冷地) 환경 학술지인 '남·북극 및 알프스 연구'(Arctic, Antarctic, and Alpine Research)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2019년 5월 지구에서 가장 높은 곳에 기상관측소를 설치하기 위해 사우스콜로 향한 애팔래치아주립대학 지리학 교수 베이커 페리 박사를 통해 캠프 주변의 토양 시료를 확보해 차세대 유전자 염기서열 분석 등을 통해 토양 내 거의 모든 미생물의 유전자를 밝혀냈다.
연구팀이 확인한 미생물 유전자 염기서열은 대부분 안데스산맥과 남극 등의 고지대에서 확인됐던 내한성 미생물과 유사했다.
이 중 가장 많은 것은 혹독한 추위와 강한 자외선을 견딜 수 있는 진균의 한 속(屬)인 '나가니시아'(Naganishia)였으며, 피부와 코의 가장 흔한 세균인 포도상구균(Staphylococcus)과 입 안 세균인 연쇄상구균(Streptococcus) 등의 유전자도 발견됐다.
해발 2만6천피트(7천924m) 이상 고도에서 채취된 시료에서 인간과 관련된 미생물이 확인된 것은 처음이라고 한다.
연구팀은 인간이 재채기 등을 통해 미생물을 쉽게 전파한다는 점에서 인간과 연관된 미생물이 캠프 주변 토양에서 발견된 것은 그리 놀라운 것은 아니나 입이나 코 등 따뜻하고 습한 환경에서 자라는 특정 미생물이 히말라야의 혹독한 환경에서 휴면기를 이어가며 생존할 만큼 탄력적이라는 부분은 인상적이라고 밝혔다.
높은 고도에서는 강한 자외선과 낮은 온도, 습기 부족이 미생물의 생존을 어렵게 한다.
인간이 사우스콜에 흘린 미생물은 죽거나 휴면 상태로 들어서고, 나가니시아와 같은 미생물은 볕이 잘 들고 습기가 있는 등의 생존 조건이 맞으면 일시적으로 성장까지 할 수 있는 것으로 제시됐다.
연구팀은 인간이 에베레스트 꼭대기로 가져다 놓은 미생물이 주변 환경에 심각한 영향을 주지는 않을 것으로 예측했다. 하지만 이는 나중에 화성을 비롯한 다른 행성에 인간이 진출할 때 그곳에 서식할 수도 있는 생명체에는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고 했다.
슈미트 교수는 "다른 행성이나 위성(달)에서 생명체를 발견할 수도 있는데, 인간이 가진 미생물이 오염시키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omn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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