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9대 IB' 중 하나…유사시 세계적 충격파 불가피
지난 수년간 대규모 스캔들·손실 사태 잇따라
(서울=연합뉴스) 이도연 기자 = 그간 경영난을 겪어온 스위스의 세계적 투자은행(IB) 크레디트스위스(CS)가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붕괴라는 악재를 만나 위기가 증폭되자 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촉발한 리먼브러더스 파산 같은 사태가 재현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확산하고 있다.
SVB 사태로 세계 금융시장이 요동치고 크레디트스위스 주가가 급락을 거듭하는 가운데 이 은행이 재무보고서에서 '중대한 약점'이 발견됐고 고객 자금이 계속 유출되고 있다고 밝히자 위기가 심화했다.
게다가 최대 주주인 사우디 국립은행이 15일(현지시간) 크레디트스위스에 추가 자금 지원을 하지 않겠다고 밝히면서 주가는 더 급락했다.
크레디트스위스가 위기에 빠진 이유와 과정을 문답으로 정리했다.
-- 크레디트스위스는 어떤 은행인가.
▲ 스위스 취리히에 본사를 둔 세계적인 IB이다.
1856년 스위스 철도 시스템 개발을 위한 자금 조달을 위해 설립됐다. 스위스 전력망·유럽 철도 시스템 구축에 대출을 제공했고 1900년대에는 중산층의 증가와 함께 소매 금융에도 진출했다.
1988년에는 미국 IB 퍼스트보스턴을 인수했고 1990년부터 2000년까지 여러 금융기관을 인수하며 몸집을 더 키웠다.
주요 20개국(G20) 산하 금융안정위원회(FSB)가 선정하는 '글로벌 시스템에 중요한 은행'(G-SIB)에 포함되는데, G-SIB는 국제적으로 영업하며 한 국가 이상의 경제권에 영향을 미치는 대형 은행으로, 매년 30개 안팎의 은행이 선정된다.
이른바 '세계 9대 IB'(Bulge Bracket) 중 한 곳으로도 꼽히는데, 이들은 모두 세계 최대 규모의 다국적 IB이며 각국 대기업, 기관, 정부 등을 상대로 서비스를 제공한다.
고객 정보를 외부에 공개하지 않는 비밀주의와 기밀 유지 등 스위스 은행의 특징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 위기는 언제 어떻게 시작됐나
▲ 크레디트스위스는 2021년 파산한 영국 그린실 캐피털과 한국계 미국인 투자자 빌 황의 아케고스 캐피털에 대한 투자 실패로 막대한 손해를 봤다.
아케고스 캐피털로 인한 크레디트스위스의 투자 손실은 55억달러(7조2천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지난해 주가가 하락하고 실적은 저조한 데다 마약 밀매조직의 돈세탁을 제대로 감시하지 않은 혐의로 법원에서 유죄 선고를 받는 등 악재가 이어졌다.
이에 최고경영자(CEO)까지 교체하는 강수를 뒀으나 위기설을 타개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지난해 10월 크레디트스위스 주가가 당시 기준 역대 최저가로 떨어지고 부도 위험 지표인 1년물 신용디폴트스와프(CDS) 프리미엄이 역대 최고치로 치솟았다.
투자 실패에 더해 각종 부패 스캔들에도 줄줄이 연루됐다.
미국에서는 지난해 법무부의 탈세 혐의 수사를 받았고 프랑스에서는 돈 세탁·세금 사기 등 수사 끝에 2억3천800만 유로(약 3천300억원)를 지불하기로 검찰과 합의하는 등 법적 문제가 속출했다.
이 같은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지난해 크레디트스위스는 중동 자금을 유치하고 대규모 구조조정에 나섰다.
사우디국립은행(SNB)이 15억 스위스프랑(약 2조1천100억원)을 투자하는 등 투자자들로부터 총 40억 스위스프랑(약 5조6천300억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했다.
IB 부문을 축소·분리하고 2025년 말까지 9천명의 인력을 감축하기로 했다.
-- 투자 유치·구조조정에도 왜 다시 위기설이 촉발했나.
▲ 미국 SVB가 지난 10일 붕괴하며 세계 금융시장에 불안 심리가 팽배해졌고 전 세계 금융주가 급락했다.
크레디트스위스도 예외는 아니어서 지난 13일 주가가 장중 15% 추락하며 역대 최저치를 경신하고 채무불이행(디폴트)에 대비한 보험료는 역대 최고치로 치솟았다.
이런 가운데 크레디트스위스가 지난 14일 2022년 연례 보고서를 통해 회계 내부 통제에서 '중대한 약점'을 발견했고 고객 자금 유출을 아직 막지 못했다고 밝히면서 불안감이 심화했다.
결정타는 크레디트스위스의 최대 주주인 사우디국립은행의 아마르 알 쿠다이리 회장이 날렸다.
그가 이날 블룸버그TV와 인터뷰에서 '자금 수요가 있으면 크레디트스위스에 추가 재정지원을 하겠느냐'는 질문에 "절대 아니다"라고 못 박자 크레디트스위스 주가는 추락했다. 주가는 결국 이날 24.24% 급락 마감했다.
게다가 크레디트스위스는 규모 면에서 SVB와 비교가 되지 않는 만큼 시장의 불안감도 더 증폭되고 있다.
크레디트스위스 채권을 보유한 자산운용사 룹 캐피털의 스콧 킴벌 상무이사는 최근 파산한 미국 지역 은행들과 달리 크레디트스위스는 전 세계에 영향을 주는 중요한 금융 기관이라며 "크레디트스위스의 반복되는 문제는 신용대출 시장에 더 큰 문제를 가져온다"고 지적했다.
-- 사태가 확산해 2008년 리먼브러더스 사태처럼 번질까.
▲ 리먼브러더스는 2007년 시작된 미국 부동산가격 하락에 따른 비우량 주택담보대출(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여파로 자금이 고갈되고 다른 은행들이 거래를 중단하자 파산했다.
일단 스위스 중앙은행인 스위스 국립은행(SNB)과 금융감독청(FINMA) 등 스위스 금융당국은 "크레디트스위스가 자본 및 유동성 요구 사항을 충족하고 있다"며 필요한 경우 이 은행에 유동성을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크레디트스위스는 이날 국립은행에서 최대 500억 스위스프랑(약 70조3천억원)을 대출받아 유동성 강화에 착수했다.
블룸버그통신 은행 칼럼니스트 폴 데이비스는 크레디트스위스가 예금과 다른 은행 대출 등 부채의 절반을 상환할 만한 자금을 갖고 있다고 전했다.
울리히 쾨르너 크레디트스위스 CEO는 은행의 유동성커버리지비율(LCR)이 한 달 이상의 대규모 자금 유출을 감당할 수 있는 정도라고 밝혔다.
다만 크레디트스위스의 규모와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하면 만약 파산 등으로 번질 경우 세계 금융시장에 미칠 충격파도 엄청날 것으로 보여 스위스 금융당국 등의 총력 대응이 필요한 상황으로 보인다.
dy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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