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보스토크항에서 강원도 동해로 출발…17일 오후 도착
여객선 이용한 단체입국은 처음…"한국 정부 지원에 감사"
(블라디보스토크=연합뉴스) 최수호 특파원 = 우크라이나 사태로 하늘길이 막혀 애를 태웠던 사할린 동포들이 16일 뱃길로 고국으로 향하는 여정에 나섰다.
16일 오전 10시 러시아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항 2층 대합실.
대한적십자사가 나눠준 이름표를 목에 건 어르신 20여명이 의자에 앉아 강원도 동해로 향할 카페리 이스턴드림호 출항을 기다리고 있었다.
3~4개의 캐리어를 끌고 대합실 한편에 마련된 대한적십자사 테이블로 가 이름표를 받는 사람들도 보였다.
이들은 작년 9월 우리 정부의 영주 귀국 지원 대상자 350명에 선정됐지만, 우크라이나 사태로 한국과 러시아를 잇는 하늘길이 끊긴 탓에 고국에 돌아가지 못한 사할린 동포 1세와 동반 가족들이다.
지난달 중순 기준으로 지난해 선정된 지원 대상자 가운데 아직 러시아 현지에 남아있는 사할린 동포는 188명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이날 여객선을 타고 한국으로 향한 사할린 동포는 63명으로, 영주 귀국 지원 대상자들이 단체로 뱃길을 통해 한국에 입국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사할린 동포 1세 조추자(79) 할머니는 이날 대합실 창가에 있는 의자에 앉아 여객선 탑승을 기다리고 있었다.
경상도가 고향인 아버지와 전라도가 고향인 어머니는 일제강점기 당시 극동 사할린주에 강제 징용됐으며, 이곳에서 조 할머니를 낳았다고 한다.
조씨는 12살이던 해 아버지는 40살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고, 이후 어머니도 지병으로 돌아가셨다고 했다.
그는 러시아 남성과 결혼한 뒤 하바롭스크주로 생활 터전을 옮겼고, 슬하에 아들과 딸 1명씩을 두고 있다. 딸은 10년 전부터 한국에서 일을 하고 있다고 한다.
이날 조씨와 함께한 딸은 "어머니는 오랫동안 힘들게 생활했고 혈압 등 문제로 건강도 좋지 않다"며 "한국과 러시아를 오가며 어머니를 돌보기가 어려워 함께 한국에 정착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연해주 우수리스크에서 생활해온 사할린 동포 2세 최종매(68) 씨는 남편과 함께 한국에 도착하면 아흔을 바라보는 시부모님을 가장 먼저 찾아뵐 계획이다.
사할린 동포 1세인 시부모님은 2000년에 영주 귀국해 경기도에 살고 있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 등 영향으로 지난 3년 동안 시부모님을 직접 찾아뵙지 못했고, 전화 통화로만 안부를 물어왔다.
최씨는 "시부모님들이 오래오래 살아주셔서 감사하다"며 "남은 시간은 함께 얼굴을 보며 지낼 수 있게 돼 행복하다. 한국 정부의 지원에도 고마움을 느낀다"고 했다.
최씨는 한국에 정착하면 한국 국적을 취득할 예정이다. 또 친정아버지 고향인 제주도를 꼭 한번 찾고 싶다고 했다.
사할린 동포 1세인 최씨 부모님은 사할린주에서 계속 생활하다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이날 사할린 동포들을 배웅한 하병규 블라디보스토크 주재 한국총영사는 "대외 여건으로 인해 사할린 동포들이 배편으로 힘들게 고국에 돌아가게 돼 마음이 편하지 않다"며 "한국에 잘 정착해 건강하게 지내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사할린 동포 63명이 탄 여객선은 오는 17일 오후 1시께 강원도 동해항에 도착할 예정이다.
대한적십자사는 사할린 동포 대부분이 고령인 점을 감안해 직원 6명을 배치해 귀국을 돕는다.
또 오는 30일 블라디보스토크에 직원들을 한 번 더 파견해 남아있는 사할린 동포들의 귀국을 지원할 예정이다.
사할린 동포는 일제강점기인 1939년부터 군수 물자 조달 등을 위해 러시아 극동 사할린주에 강제 징용됐지만, 1945년 8월 해방 후에도 냉전체제가 지속해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한인과 그 후손들이다.
우리 정부는 1990년대 초부터 영주 귀국을 지원해 왔다. 2021년부터는 '사할린 동포 지원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영주 귀국에 필요한 항공운임 일부와 초기 정착비, 임대주택 등을 지원하고 지원 대상도 확대했다.
su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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