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정상회담] 日, 이번에도 '역사인식 계승'만…'사죄·반성' 없었다

입력 2023-03-16 21:57   수정 2023-03-17 06:48

[한일 정상회담] 日, 이번에도 '역사인식 계승'만…'사죄·반성' 없었다
기시다, 日 '호응' 질문에 "성과 있었다"…피고 기업 미래기금 참여도 미정


(도쿄=연합뉴스) 박상현 특파원 = 한일 관계가 '해빙 모드'에 들어간 가운데 16일 도쿄 총리관저에서 진행된 한일 정상회담 기자회견에서도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일제강점기 역사와 관련된 '사과'와 '반성'을 직접 언급하지 않았다.
한국 정부가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문제의 해법을 일본과 조율하는 과정에서 요구한 '성의 있는 호응'은 일본 측 사죄와 배상 참여였다.
하지만 한국 정부의 해법 발표 때는 물론 정상회담이 열린 이날도 일본은 전향적 태도를 보이는 대신 기존 입장을 되풀이하는 데 그쳤다.
기시다 총리는 윤 대통령과 정상회담 성과를 소개하는 공동 기자회견에서 모두발언을 통해 한국의 징용 문제 해결책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일본 정부는 1998년 10월에 발표한 한일 공동선언을 포함해 역사 인식에 관한 역대 내각의 입장을 전체적으로 계승하고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기시다 총리는 '징용 문제와 관련해 일본 측 호응이 부족하다는 한국 여론을 호전시킬 제안이 있었는가'라는 질문에는 "오늘도 몇 가지의 구체적인 성과를 볼 수 있었고, 앞으로 양국이 협력해 하나씩 구체적인 결과를 내고 싶다"고 답했다.
이어 셔틀 외교 재개 방침을 확인하고, 다양한 분야에서 정부 간 의사소통을 해 나가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기시다 총리의 발언은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 해제, 지소미아(GSOMIA·군사정보보호협정) 정상화, 경제안보 협의 시작 등에 합의한 것이 일본의 호응 조치이자 징용 문제 해결의 성과라는 인식을 나타낸 것으로 풀이된다.
'역대 내각의 역사 인식 계승'은 한국 정부가 지난 6일 징용 해법을 발표했을 때 기시다 총리와 하야시 요시마사 외무상이 사용한 표현이다.
당시 기시다 총리는 "1998년 한일 공동선언을 포함해 역사 인식에 관한 역대 내각의 입장, 이것을 전체적으로 계승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식민 지배에 대한 반성과 사죄를 담은 1998년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 등을 계승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으로 분석됐다.
이 선언에서 오부치 총리는 일본이 과거 한때 식민 지배로 한국 국민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안겼다는 역사적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면서 이에 대해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한다고 밝혔다.
일본의 식민 지배와 침략으로 피해를 본 아시아 사람들에게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 의사를 나타낸 1995년 무라야마 담화와 달리 한일 공동선언은 대상이 한국 국민이라는 점이 특징이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기시다 총리가 사죄와 배상이라는 단어를 직접 사용하지 않고 에둘러 역사 인식을 계승한다고 표명한 것만으로는 '성의 있는 호응'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한국갤럽이 지난 8∼9일 실시한 징용 배상 해법에 관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59%는 '일본의 사과와 배상이 없어 반대한다'고 했다.
게다가 하야시 외무상이 9일 중의원에서 '강제동원'표현의 적절성에 관한 질문에 "적절하지 않다"고 답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역사 인식 계승'만 반복하는 일본 정부가 과연 징용 문제 해결에 진정한 의지가 있는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일본에는 한국이 향후 징용 해법을 뒤집을 가능성이 있다는 견해가 퍼져 있고, 집권 자민당에서 기시다 총리가 자신이 이끄는 파벌의 세력이 약해 보수 성향 의원이 많은 최대 파벌 '아베파'를 의식할 수밖에 없다는 시각이 있다.
실제로 자민당의 일부 보수파 의원들은 최근 일본 정부가 한국의 징용 해법을 '과잉 평가'하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한편 징용 판결의 피고 기업인 미쓰비시중공업과 일본제철도 이날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와 게이단렌(經團連·일본경제단체연합회)이 창설하겠다고 발표한 '한일·일한 미래 파트너십 기금' 참여에 여전히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다.
일본제철은 "게이단렌 산하 기업으로 앞으로 파트너십의 구체적인 내용을 확인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고, 미쓰비시중공업도 "게이단렌 회원사로서 구체적인 내용을 확인해 나가겠다"고만 했다.
김병준 전경련 회장직무대행은 기자회견에서 피고 기업 참여와 관련해 "개별 기업 참여 여부는 각각 의사에 달렸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서도 한국 정부의 '제3자 변제' 방식에 거부 의사를 나타낸 징용 피해자들을 만족시키려면 피고 기업의 호응이 필수적이지만, 피고 기업들이 배상 참여는커녕 기금 기여도 주저하면 한국 내 여론이 악화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psh59@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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