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레알재단, 117개국 연구자 5천여명 상대로 설문 조사
"'아가씨' 등 모욕적 언사 반복되고, 선 넘은 사생활 질문도"
(서울=연합뉴스) 강진욱 기자 = 세계 여성 과학자의 절반이 직장에서 성희롱을 당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AFP통신이 1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 통신에 따르면 '로레알 재단'의 의뢰로 여론조사 전문 기관 입소스가 지난해 7월 26일부터 9월 12일 사이 상담 형식으로 117개국 5천여 명의 연구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여성 과학자 49%가 "최소 한 차례 직접적으로 성희롱 상황을 경험했다"고 대답했다.
조사에 응한 이들은 세계 각지 50여개 공공 기관 또는 민간 회사에서 과학, 기술, 엔지니어링, 수학 분야에 종사하고 있다고 AFP통신은 전했다.
이들이 겪은 성희롱 상황의 절반 가까이는 2017년 '미투' 운동이 시작된 이후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 과학자들의 65%는 자신들이 당한 성희롱이 경력에 불리하게 작용했다고 대답했다.
응답자 4명 중 1명은 부적절하고 반복적으로 '아가씨'(girl)', '인형'(doll), '영계(chick)' 등으로 불리거나 모욕적 언사를 들었다고 밝혔다. 응답자의 24%는 "사생활이나 성생활과 관련된 주제넘은 질문을 반복적으로 받아 불쾌했다"고 답변했다.
이런 성희롱은 대부분 직장 생활 초기에 발생한 것으로 조사됐다.
응답자의 약 절반가량은 자신이 속한 조직에서 특정인을 피해 다녔고, 5명 중 1명은 직장이 안전하지 않다고 느꼈다고 대답했다.
응답자의 약 65%는 직장에서 일어나는 성차별과 성희롱을 방지하기 위해 충분한 조치가 취해지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5명 중 1명만이 자신들이 속한 기관에 피해 사실을 알린 것으로 나타났다.
인권 변호사인 알렉산드라 팔트 로레알 재단의 최고경영자(CEO)는 AFP에 "미투 운동이 일으킨 혁명적 변화 속에서도 과학계는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이번 조사를 통해 확인됐다"고 지적했다.
팔트 CEO는 또 "여성 연구자들의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하게 하려면 먼저 이들이 안전해져야 한다"며 "효과적이고 투명한 내부 보고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로레알 재단은 과학연구 기관들이 성희롱에 대해 무관용 원칙을 적용하고 문제 해결을 위해 충분한 예산을 확보할 것도 촉구했다.
로레알 재단은 세계 뷰티 시장의 큰 손인 로레알 그룹이 여성 과학자들을 후원하기 위해 설립한 단체로, 유네스코와 함께 여성 과학자들을 지원하고 있다.
재단에 따르면, 세계 각국 과학 연구진 가운데 여성은 33%에 그치고 있고,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 가운데 여성은 4%에 불과한 실정이다.
kjw@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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