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연석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장, 옛 문헌 토대로 1795년 통제영 거북선 복원
"거북선 구조 바꾸려면 왕 승인받아야…임진왜란 거북선도 같은 구조"
(서울=연합뉴스) 조승한 기자 = 거북선의 모습이 갑판 전체에 지붕을 둥글게 씌운 형태가 아닌 중앙 갑판 부분에 판자를 세우고 지붕을 올려 한 층을 더 쌓은 구조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채연석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장(전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원장)은 1795년 편찬된 '이충무공전서'에 담긴 거북선 설계자료 '귀선도설'을 분석해 이런 결론을 얻었다며, 19세기에 실제 이를 활용해 거북선을 만들었다는 근거가 될 만한 상소 기록도 발견했다고 19일 밝혔다.
채 위원장은 조선시대 신기전을 처음으로 복원하는 등 전통 화약무기 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최근에는 화약무기의 연장선으로 거북선 연구도 진행하고 있다.
이충무공전서는 왕명으로 편찬된 이순신의 유고 전집이다. 여기에 담긴 귀선도설에는 1795년 당시 통제영 거북선과 전라좌수영 거북선 2종류가 자세히 설명돼 있다.
다만 귀선도설이 실제 거북선의 설계도로 쓰였다는 증거는 없었는데, 채 위원장은 이번에 조선시대 문헌 '비변사등록'에서 1793~1794년 삼도수군통제사를 지냈던 신대현이 1809년 4월 상소를 올려 "최근 각 수영의 거북선이 이름만 거북선이지 다른 배와 다름이 없다"며 거북선을 귀선도설에 맞춰 건조하도록 하고 이를 어긴 게 드러나면 문책해달라고 한 것을 새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채 위원장은 "실질적으로 1809년 이후에는 귀선도설을 바탕으로 거북선을 건조했다고 볼 수 있다"며 이 책이 거북선 설계도에 해당하는 자료라고 강조했다.
그는 귀선도설을 토대로 하면 거북선의 형태는 앞에서 보면 마치 판옥선 위에 챙모자를 씌운 구조가 된다고 주장했다.
귀선도설에는 갑판 위 뚜껑(蓋板·개판)을 22개 판자를 대서 만들었다고 설명하는데, 함께 실린 그림을 분석하면 5장은 갑판 부분을 씌웠고 3장은 벽, 나머지 3장은 지붕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채 위원장은 "이런 형태면 폭이 15척(약 4.7m), 높이가 5척이 된다"며 "이 정도면 충분히 화포를 측면에 설치하고 전투를 할 수 있는 공간이 된다"고 말했다.
갑판 위에 만든 3층에 함포를 배치했다는 근거도 1894년 '통제영 해유문서'에 2층과 3층 전후좌우에 함포를 배치했다는 내용을 토대로 확인했다고 그는 설명했다.
1층은 창고고, 2층 선두에 3대, 선미에 1대, 3층 좌우에 24대, 선두에 2대, 선미 1대 등 31대를 설치했을 것으로 추정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또 거북선의 상장(배의 윗부분) 길이는 85척(26.6m), 폭은 32척(10m)으로 기존에 알려진 거북선보다 상장이 긴 것으로 봤다.
거북선에는 장교 6명, 사부 18명, 화포장 10명, 포수 24명, 타공 4명, 격군 120명 등 182명이 탑승하며, 수군이 한 달 사용할 군량미 52석, 찐쌀 6석, 미숫가루 3석 등 61석 군량미를 1층 창고에 실었을 것이란 분석도 내놨다.
이번에 제시된 형태는 기존에 주로 알려진 철갑 지붕을 두른 거북선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거북선은 지붕의 형태를 비롯해 전체 구조가 2층인지 3층인지, 포의 위치가 어디에 존재하는지 등을 놓고 다양한 주장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채 위원장은 "전체적으로 지붕을 씌운 형태는 지금까지 나온 그림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생긴 오해가 아닌가 한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는 1795년 통제영 거북선을 추정한 것인 만큼 실제 임진왜란 때 이순신이 쓴 거북선의 형태와 다를 가능성도 남아 있다.
이에 대해 채 위원장은 "판옥선이나 거북선 구조를 바꾸려면 왕에게 승인받아야 하는 만큼 비율 등은 전통적으로 이어 오는 규정대로 만들었을 것으로 본다"며 "임진왜란 당시 거북선에서 변화가 없을 것으로 저는 본다"고 말했다.
이어 "1795년 형태가 이런 모습이란 게 정리되면 그 전은 어떨 것이냐는 더 연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분석 결과는 지난해 12월 해군사관학교 해양연구소가 발행한 '충무공 이순신과 한국해양' 제9호에 발표됐다.
shj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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