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정상회담이 끝난 뒤 우리 정부를 난처하게 만드는 일본 언론발 보도가 줄을 잇고 있다. 일본의 극우 성향 산케이신문은 20일 기시다 총리가 윤 대통령에게 한국의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규제 철폐를 요구했다고 보도했다. 산케이는 지난 18일엔 한국 해군의 일본 자위대 초계기 조사 문제를 기시다 총리가 거론했다고 전했고, 교도통신은 지난 16일 회담 종료 30여분 만에 기시다 총리가 "위안부 합의의 착실한 이행을 요청하고 다케시마(독도의 일본식 표현)에 대한 입장도 전달했다"고 타전했다. 이들 보도는 두 정상이 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전혀 거론하지 않은 것이다. 하나같이 '일본 정부 관계자'를 인용한 보도여서 일본 정부 측이 고의로 흘렸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다. 일본 측의 언론플레이가 사실이라면 모처럼 살려낸 양국의 대화 무드에 찬물을 끼얹는 행태라는 비난을 면키 어렵다.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를 강조하며 국민 소통에 총력을 기울이는 윤 대통령으로선 여간 곤혹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문제의 일본발 보도는 위안부 합의 같은 첨예한 갈등 현안에 집중되는 양상이다.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문제의 경우 우리 국민의 건강과 직결된 중차대한 현안이다. 일본이 올봄 해양 방류 계획을 천명하고 있지만 양국 간 사전 충분한 협의는 물론이고 우리 정부가 국민 여론을 설득하는 작업이 꼭 필요하다. 이번 회담에서 공식 의제로 채택되지 않고 두 정상이 각자의 입장을 언급하는 수준에 그친 이유일 것이다. 이를 모를 리 없는 일본 내에서 회담 의제 및 성과와 거리가 먼 내용이 계속 흘러나오고 있으니 유감스럽다. 집권 자민당 내 소수파인 기시다 정부가 아무리 다음달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다고 해도 외교관계에선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다.
우리 국내에선 회담 후 '과거 식민지배에 대한 통절한 반성과 사죄' 언급이 나오기 기대했지만 기시다 총리는 침묵했다. "도대체 일본이 언제까지 사과해야 하느냐"는 항변의 연장선이었지만, 일본은 이를 따지기 전에 왜 매번 이런 요구를 받아야 하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진정한 사죄를 한다고 해놓고 돌아서면 딴소리하는 이중적 태도가 '사과의 악순환'을 초래했다는 지적을 일본은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 외교당국의 언론 대응도 매끄럽지 못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딱 부러진 설명 대신 모호한 수사로 일관해 문제를 키운다는 것이다. 대통령실은 기시다 총리가 위안부 합의 이행을 요구하고 독도 영유권 문제를 거론했다는 보도를 두고 진위 논란이 확산하자 20일 "논의된 바가 없었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규제 철폐 문제에 대해서는 "정상간 대화는 공개하지 않는게 원칙"이라고 밝혔다. 다만 일본 정관계 인사들이 윤 대통령을 예방한 자리에서는 나온 적이 있었다는 취지로 전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실은 일본 측의 왜곡 보도와 관련해 우리 외교당국에서 유감을 표시하고 재발 방지를 당부했다고 전했다. 일본 측에서 누가 됐든 회담의 사실관계를 왜곡한다면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 그래야 강제동원 문제만큼 복잡다단한 난제를 풀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은 한일관계 개선의 진정성을 의심받는 언행을 자제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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