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테크+] 베토벤 사인 납중독 아니다…"근거됐던 머리카락은 여성의 것"

입력 2023-03-23 00:00  

[사이테크+] 베토벤 사인 납중독 아니다…"근거됐던 머리카락은 여성의 것"
납중독설 배제…"사인, B형간염·음주에 따른 간경변 가능성"
국제연구팀, 머리카락 게놈 분석…간질환 유전인자·부계 조상 불륜도 확인

(서울=연합뉴스) 이주영 기자 = 영국과 독일 등 국제 공동연구팀이 1827년 사망한 위대한 음악가 베토벤의 머리카락을 이용해 게놈(유전체)을 처음으로 분석, 그의 건강과 질병, 사인과 가족 역사에 관한 비밀을 밝혀냈다.

분석 결과 그에게는 간질환 위험 유전인자가 있었고 지속적인 음주와 B형 간염으로 인해 간질환이 악화해 숨졌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추정됐다.
과거 베토벤 납중독 사망설의 근거가 됐던 머리카락 뭉치는 베토벤이 아니라 여성의 것으로 밝혀져 납중독설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또 벨기에에 사는 베토벤 친척들의 DNA를 분석한 결과 이들은 베토벤 부계 조상 중 하나가 불륜으로 낳은 자식의 후손들일 것으로 추정됐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트리스탄 베그 교수와 독일 막스플랑크 진화인류학 연구소 요하네스 클라우스 박사 등 국제 연구팀은 23일 과학저널 '커런트 바이올로지'(Current Biology)에서 베토벤 머리카락 게놈 분석에서 이런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베토벤 머리카락으로 알려진 모발 8타래를 분석, 5타래가 유럽 남성 1명에서 나온 것을 확인한 뒤 이를 진짜 베토벤 머리카락으로 보고 게놈을 분석했다.

베토벤은 숨지기 25년 전인 1802년 주치의에게 자신의 병을 기록하고 이를 공개하라고 요청했으나, 그의 건강과 사망 원인은 유전학적 연구의 도움을 받지 못한 채 지금까지 논쟁거리가 돼 왔다.
그는 20대 중후반부터 진행성 난청을 앓다가 1818년 청력을 완전히 잃었고, 만성 위장병과 간질환 등을 앓다가 1827년 사망했다.
연구팀은 이 연구에서 베토벤 머리카락으로 알려진 스텀프 타래(Stumpff Lock)와 할름-세이어 타래(Halm-Thayer Lock), 모셸레스 타래(Moscheles Lock), 힐러 타래(Hiller Lock), 케슬러 타래(Kessler Lock) 등 8타래의 모발을 분석했다.
그 결과 스텀프 타래 등 5타래는 베토벤 가계 기록과 일치하는 유럽 남성 1명의 것으로 베토벤 생애 마지막 7년간 채취된 것으로 보이며, 유전자 데이터와 출처 정보 등을 종합하면 베토벤의 진짜 머리카락이 거의 확실하다고 연구팀은 밝혔다.

연구팀은 게놈 분석에서 청각장애와 위장질환의 결정적 원인은 찾지 못했으나 그가 많은 간질환 위험 유전요소를 가지고 있었고 죽음으로 이어진 마지막 병을 앓기 수개월 전 B형 간염 바이러스에 감염됐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베그 교수는 "베토벤이 마지막 10년간 사용한 대화 기록집을 보면 이 기간 술을 매우 규칙적으로 마신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며 "음주량을 알기는 어렵지만 간에 해로운 정도였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어 "이렇게 오래 술을 과하게 마셨다면 간질환 위험 유전요인과의 상호작용과 B형 간염 등으로 간경변에 걸렸을 수 있다는 설명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연구팀은 베토벤의 청력 상실에 대해서는 모발에서는 청력 상실을 일으킬 만한 유전적 원인은 드러나지 않았다며 다양한 유전적 기여도를 가진 질병 등 몇 가지 잠재적 원인이 관련됐을 것으로 추정했다.
공동연구자인 본대학병원 인간 유전학연구소 악셀 슈미트 박사는 청력 손실에 대한 명확한 유전적 근거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그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면서 "개인 유전체 해석에 필수적인 참조 데이터가 꾸준히 개선되고 있는 만큼 향후 베토벤의 게놈에서 청력 손실의 원인이 될만한 단서가 발견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또 베토벤을 오래 괴롭힌 위장질환의 유전적 요인도 발견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그는 종종 위장질환 원인으로 지목되던 과민성 대장 증후군(IBS)에 대한 유전적 보호 기능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베그 교수는 "알려진 베토벤의 병력을 고려할 때 사인은 간질환 위험 유전요인과 B형 간염, 음주 등 3가지가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높다"며 "향후 연구에서 각 요인이 어느 정도 관여했는지 명확히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이 연구에서는 또 베토벤의 청력 상실과 사망의 원인으로 유력하게 지목돼온 납중독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배제하는 결과가 나와 주목된다.
분석된 8타래의 머리카락 가운데 납중독설의 근거로 유명한 힐러 타래(Hiller Lock)는 베토벤이 아니라 여성의 머리카락인 것으로 밝혀졌다.
힐러 타래는 베토벤 사망 당시 15살이던 음악가 페르디난트 힐러가 베토벤 시신에서 잘랐다고 알려졌던 머리카락으로, 1990년대 후반 분석에서 정상인의 100배가 넘는 납이 검출돼 납중독 사망설의 근거가 됐다.
베그 교수는 "힐러 타래가 베토벤이 아니라 여성 머리카락이라는 게 밝혀졌기 때문에 이를 근거로 한 이전 분석 결과들은 어느 것도 베토벤에게 적용되지 않는다"며 "앞으로의 납, 아편, 수은 등에 대한 시험은 진짜라고 밝혀진 머리카락을 기반으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연구에서는 베토벤 가족 역사의 단면도 확인됐다.
연구팀이 벨기에에 사는 베토벤 친척들의 유전자를 분석한 결과 서로 일치하는 유전자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신 친척 일부는 베토벤과 부계 조상을 공유하는 것으로 밝혀졌지만 이들의 Y 염색체는 베토벤 머리카락과는 일치하지 않았다.
연구팀은 이 친척들이 시기를 특정할 수는 없지만 베토벤 직계 부계 혈통에서 적어도 한 명이 1572~1770년 '혼외 출산'으로 낳은 사람의 후손일 가능성이 크다는 결론을 내렸다.
베그 교수는 "베토벤의 게놈을 연구자들이 이용할 수 있게 공개하고 진짜라는 게 밝혀진 그의 머리카락을 추가함으로써 향후 그의 건강과 계보에 대해 남아 있는 의문들이 풀릴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scitech@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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