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9월 태풍 침수 이후 약 5개월만에 완전 정상화…제품 품질 83% 회복
쇳물 붓던 용기로 물 퍼내고 전기차로 펌프돌려…140만명 복구 매진
(포항=연합뉴스) 권희원 기자 = "오늘로써 2열연공장이 정상 재가동에 들어간 지 99일이 됩니다. 첫 제품 생산에 성공한 순간 직원들과 만세를 외치고는 달려 나가서 울었습니다."
이현철 포스코 포항제철소 2열연공장 파트장은 지난 23일 공장을 찾은 기자들을 보자 이렇게 울먹였다. 임직원들의 간절함과 집념이 불가능을 기적으로 바꿨던 그 날의 감격스러움이 그에게는 여전히 어제 일처럼 생생한 듯 했다.
포스코는 태풍 힌남노로 침수 피해를 입은 포항제철소의 모든 공정이 완전 정상화된 지난 1월 20일 이후 약 두 달만에 공장 내부를 취재진에 공개했다.
태풍으로 최대 500㎜의 기록적인 폭우가 포항에 쏟아졌던 작년 9월 6일, 인근 하천인 냉천이 범람하면서 서울 여의도의 세 배 면적에 달하는 포항제철소의 대부분이 물에 잠겼다.
첫 쇳물 생산 49년만에 공장 전체의 가동을 멈추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맞았던 포항제철소는 포스코 임직원과 소방, 해병대까지 140만명의 인력이 밤낮없이 복구에 매달린 끝에 135일만의 완전 정상화라는 '기적'을 일궈냈다.
특히 냉천과 가까워 공장 전체가 물에 잠기면서 피해가 가장 컸던 2열연공장은 100일만인 작년 12월 15일에 복구를 완료했다.
2열연공장은 포항제철소가 연간 생산하는 약 1천480만t(톤)의 제품 중 33% 수준인 500만t을 생산하는 핵심 공정이다. 코일 형태의 열연 제품은 냉연·스테인리스·전기강판을 포함한 후공정의 소재가 되기도 하고 그 자체로 최종 제품이 돼 기계·건축, 자동차, 일반·API(에너지용) 강관 생산에 쓰이기도 한다.
실제로 이날 취재진이 직접 방문한 2열연공장에서는 그 어떤 침수 피해의 흔적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시뻘겋게 달궈진 슬라브는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육중한 기계음과 함께 1천520℃의 가열로를 빠른 속도로 오갔고, 물을 뿌려 냉각하는 과정에서는 '치이익' 소리를 내며 수증기가 시원스럽게 치솟았다.
그러나 2열연공장 직원들은 암담했던 침수 당시를 여전히 또렷하게 기억했다.
2분에 1개씩, 하루에 700개의 코일을 생산하던 공장에는 1.5m 높이까지 물이 차올라 배수 작업만 해도 4주가 걸렸고, 공장 내 일부 탱크는 수압을 이기지 못해 물 위에 둥둥 떠 있었다. 물을 뺀 뒤에는 발이 푹푹 빠지는 30㎝의 뻘을 2주에 걸쳐 퍼내야 했다.
열연공장 다음으로 찾은 2제강공장과 2고로(용광로) 역시 이제는 모두 정상적으로 가동되고 있었다.
2제강공정에서는 60t(톤)의 거대한 바가지 모양의 용기가 쇳물을 전로에 붓는 모습을 살펴볼 수 있었다. 제강 공정은 고로에서 나온 쇳물 속 불순물을 제거하고 성분을 조정하는 과정으로, 포항제철소 생산 제품의 70%는 2제강공장을 거쳐야 한다.
그러나 시뻘건 쇳물을 붓던 용기는 침수 당시 공장 전체에 가득찬 흙탕물을 퍼내는 데 사용돼야 했다. 최주한 2제강공장 공장장은 "한 직원은 저에게 전화를 걸어 '이제는 더 못 버티겠다'고 했다. 컨테이너 박스 100개를 쌓을 수 있는 공간 네 곳이 물에 잠겼다. 모두가 절망적인 순간이었고 두려움밖에 없었다"며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전력 공급마저 끊긴 상황에서 직원들은 전기차에 펌프를 연결시켜 배수 작업을 했고, 소방청으로부터 지원받은 방사포까지 동원됐다. 그 결과 2제강공장은 침수 이후 6일만에 재가동에 성공했다.
현재 포항제철소는 제품 품질을 침수 이전의 83% 수준까지 끌어올렸고, 설비 장애율도 재가동 후 6주차부터 감소하기 시작해 안정화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아픔을 딛고 일어난 포항제철소는 이제 친환경·스마트 공정을 앞세운 첨단 제철소로의 본격적인 도약을 꿈꾼다.
이날 마지막으로 방문한 2고로는 이미 각종 첨단기술의 집약체였다.
최명석 2고로 공장장은 "그간 고로는 마치 한의사가 진맥을 하는 것처럼 표면의 온도계와 압력계만으로 내부 상황을 추측해야 했지만 이제는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스마트 고로를 도입해 고로 내부 조건을 자동 제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과거에는 고로에 투입되는 철광석과 석탄 샘플을 직접 채취해 입도(알갱이의 크기)와 수분 등을 분석했지만 이제는 이를 모두 실시간 고화질 영상으로 분석해 데이터화하고 있고, 사람이 직접 온도계로 측정해야 했던 고로 온도도 현재는 기계를 활용해 실시간 측정하고 있었다.
더 나아가 포스코는 아시아 철강사 최초로 2050 탄소중립을 선언하고 친환경 수소환원제철 모델인 '하이렉스'(HyREX)를 도입해 대표적인 탄소 다배출 업종이라는 철강산업의 한계까지도 극복한다는 전략이다.
포스코 임직원들은 비온 뒤 땅이 굳는 것처럼 침수 피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다진 일종의 '전우애'도 재도약의 발판이 되어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 듯 했다.
정석준 선재부 3선재공장 공장장은 "재가동 후 첫번째 선재가 생산되는 날 야간 작업자들도 모두 일찍 출근하는 것을 보고 얼마나 모두가 애타게 기다렸던 순간이었는지 실감했다"며 "복구 작업을 하며 협력사와의 오해도 풀렸고 이전보다 직원들과 소통도 훨씬 잘 된다"며 미소지었다.
hee1@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