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라화 가치 80% 폭락…에르도안 대통령 경제정책 무용지물
(서울=연합뉴스) 김성진 기자 = 튀르키예가 오는 5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경제난에 시달리고 있다고 영국 주간 이코노미스트가 2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겉으로 보기에 튀르키예 대도시에선 식당이 종종 손님들로 미어터진다.
그러나 이 같은 외형은 '기만적'이다. 인플레이션을 지켜보며 저축 했다가 내일 돈을 날려버리느니 벌은 만큼 오늘 다 써버리는게 낫겠다는 판단에서 중산층들이 몰려드는데 따른 것이다.
튀르키예의 인플레이션은 공식 집계 기준으로 55%이지만 실제로는 이보다 더 심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튀르키예 인플레이션은 지난해 최고치 85%에서 일시적으로 감소했으나 정부 정책 때문이라기보다 기저효과 때문이다. 튀르키예 인플레이션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아직 최고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글로벌 인플레이션 추세 중에도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이 금리 인하를 통한 리라화 가치 급락과 수출 부양 및 국내 생산 진흥을 위해 쓴 경제모델은 이미 수명을 다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올 대선 전 인플레를 한 자릿수로 낮추겠다고 한 재무장관의 약속은 빈말이 되고 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모든 경제 및 통화 정책 지렛대를 손에 쥐고 있으나 이들 지렛대를 각기 다른 반대 방향으로 끌어당겨 왔다는 것이다.
가령 기준금리는 2021년 이후 10%포인트가 내렸다.
이 때문에 리라화 가치가 지난해 최저점을 기록하면서 무역적자는 지난 1월 100억달러(약 13조원)로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튀르키예 관리들은 그러나 리라화 추가 하락을 막기 위해 은행 융자를 제한하고 수백억달러의 외환보유고를 팔아 중앙은행 금고를 고갈시켜 놓았다. 5년 만에 달러화 대비 가치가 80% 떨어진 리라화는 이제 안정됐지만, 이번에는 에르도안 대통령의 경제모델에서 수혜 계층이던 수출업자들이 도리어 피해를 보면서 반발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일반 시민은 생활비 급등으로 고통받고 있다. 정부는 환율 관리 외에 물가 상승에는 사실상 손을 놓고 있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난 2월 튀르키예 남부에서 발생해 5만명 이상의 사망자를 낸 강진으로 경제는 큰 타격을 입었다. 남부 지역 도시와 타운 전체가 붕괴하면서 이재민 수는 330만명에 달한다.
이런 가운데 야권 6개당 단일 대선 후보로서 '튀르키예의 간디'라고 불리는 케말 클르츠다로울루의 여론조사 지지율은 에르도안 대통령 지지도보다 4%포인트 이상 높다. 이는 에르도안이 주요 선거 전에 맞닥뜨린 지지율 차이로는 가장 크다.
지진으로 인해 과거 대선전 이맘때면 요란법석 했을 유세전이 가라앉은 상황도 야당에는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국내적으로 경제정책에서 속수무책 상황이 된 에르도안 대통령은 외부를 향해 '신사적으로' 처신하면서 경제적 지원을 요청하고 있다. 이전과 달리 그는 지난 17일 핀란드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을 승인했다.
물론 튀르키예에선 대선 2개월을 앞두고 다른 나라에서 2년 사이 일어날 수 있는 일보다 더 많은 일이 벌어질 수 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권력을 잃을 공산이 커질수록 이전 방식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 그는 외부와 갈등 유발로 국내 지지도 반등을 꾀하기 위해 그리스와 해양 경계선을 두고 새롭게 대치 국면을 조성할 가능성이 있다고 튀르키예 경제정책재단의 분석가인 셀림 코루가 말했다.
이런 가운데 사실상 파산 상태인 경제는 예상보다 더 오래 굴러가고 있다고 이스탄불 코크 대학의 셀바 데미랄프가 말했다. 그는 "그들은(에르도안 대통령과 내각) 현 시스템이 폭발하기 전에 선거전까지는 어떻게든 버텨보려고 애쓰고 있다"고 덧붙였다.
sungji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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