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통에 '이중고' 우크라 장애인 가족들…지원서비스는 '사치'

입력 2023-03-29 11:58   수정 2023-03-29 12:04

전쟁통에 '이중고' 우크라 장애인 가족들…지원서비스는 '사치'
복지시설 타격, 재정지원도 급감…가정서 돌봄도 어려워


(서울=연합뉴스) 김성진 기자 = 우크라이나 장애인과 가족들이 러시아의 침공 이후 더 열악해진 상황에서 고통받고 있다고 미국 CNN 방송이 2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전쟁으로 많은 장애인 돌봄 시설이 손상을 받거나 러시아 점령지에서 온 환자들로 가득 찬 상태다.
전쟁은 특히 우크라이나 보건·복지 시스템에 큰 부담을 안기고 특히 지적장애인과 그 가족들에게 굉장한 타격을 줬다.
우크라이나에서 이들의 상태는 일반 대중에게 잘 보이지 않고 오해받기 일쑤다.
자폐아(16) 막심을 홀로 키우는 아버지 이우리 카푸스티안스키이는 전시에도 여전히 두 살배기 수준처럼 행동하는 아들 때문에 가슴을 졸여야 했다. 한번은 군부대 주변의 총을 둔 군인들 사이에서 마구 뛰어다녀 신경질이 난 군인들이 행여 어떻게 할까 봐 노심초사했다.
지난해 2월 러시아 침공 전에도 지역사회는 만성적 지원 서비스 부족에 시달리고 있었다. 전쟁에 자원을 기울이는 총력전 때문에 그나마 있던 소수의 지원 서비스도 곤란해졌다.
우크라이나 지적장애인 NGO(비정부기구) 총연합 대표인 라이사 크라우츠헨코는 "관리들로부터 전시에 지적장애인과 그들 가족을 돌보고 지원하는 것은 사치라는 말까지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래서 우리는 이 사치를 누리기 위해 전쟁이 끝날 때까지 기다릴 것"이라고 말했다.
크라우츠헨코 대표의 아들 올렉시이는 옛소련 시절인 1980년대 중반에 태어나 지적장애와 행동장애를 갖고 있다.
그나마 올렉시이 같은 장애인들은 크라우츠헨코가 설립한 NGO 데렐라에서 운영하는 휴양 프로그램에 참여해 시간을 보내는 것이 유일한 낙이다.
수도 키이우 남쪽으로 차로 두 시간 거리에 있는 보후슬라우의 한 농가는 장애인들에게 전쟁으로부터 탈출구 같은 역할을 한다. 시골에 있어 공습 사이렌도 울리지 않고 최근 설치된 태양광 패널 때문에 단전도 안 된다.
사막의 오아시스와 같은 이곳에서 장애인들은 최근 공통으로 쓰는 어두운 방을 디스코 홀로 개조해 올렉시이 등 몇몇이 저녁 댄스 모임을 갖고는 한다.
싱글맘으로 고령의 노모까지 부양하는 율리아 클레페츠는 자폐증을 가진 딸 마리나(26)를 힘겹게 돌보고 있다. 그래도 딸이 한 달에 열흘 정도 휴양시설에 가 있다가 돌아오면 자신도 숨을 좀 돌리고 마리나도 증세가 좀 호전된 상태에서 서로를 그리워하게 된다고 말했다.
전쟁 발발까지 이 휴양 프로그램은 키이우 시정부의 재정지원을 부분적으로 받았다. 매 열흘 숙박에 580달러(약 75만원)가 드는 상황에서 외국 후원자가 6개월간 돕고 나섰으나 지금은 운영자금이 말라가고 있다.
크라우츠헨코 대표는 만성적 지원 부족으로 많은 가족이 장애를 가진 자녀를 시설에 보내든지 아니면 모두 자부담으로 돌봐야 하는 난감한 선택에 직면했다고 토로했다.
우크라이나에선 전쟁 전 4만명이 기관으로 보내졌다. 우크라이나 정부에 따르면 전쟁 초기 수개월 만에 4천명이 시설에 추가로 수용됐다.
우크라이나 의회는 2017년 지적장애인과 가족을 재택 간호에서 지역사회 기반 지원 체제로 전환하는 개편안을 통과시켰으나 전쟁 속에 이행이 지체됐다.
우크라이나 정부 부서와 키이우 지역 거주 시설 다수는 장애인 지원 서비스와 재정지원이 가능한가에 대한 CNN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CNN은 몇몇 장애인 가정 사례도 차례로 소개했다.
중증 뇌성마비를 앓고 있는 17살 사스하 크하리토노우는 어머니가 3개월 전 사망한 후 81세 양할머니가 젖병으로 먹여주는 쌀음료로 연명했다. 하루 두 번씩 먼 고모뻘 친척이 와서 24시간 계속 돌봄이 필요한 그에게 밥을 먹이고 기저귀를 가는 것을 도와준다.
그는 그러나 이달 초 키이우 근처 임시 보호시설로 보내져서 어머니가 숨졌을 때처럼 한동안 제대로 먹지도 않으려고 했다. 이 때문에 간호사가 튜브를 이용한 강제 식사 주입까지 얘기할 형편에 처했다고 고모가 전했다.
60대인 할리나와 올렉산드르 필리펜코 부부는 정신건강에 문제가 있는 아들과 함께 자신들과 혈연관계도 아닌 65세 다운증후군 남성 사스하 스헤우츠헨코를 돌보고 있다.
이들은 러시아군의 무자비한 폭격으로 쑥대밭이 된 남동부 도시 마리우폴에서 최근 키이우 지역 보후슬라우의 임시 숙소로 피란 왔다.
필리펜코 부부는 전쟁이 났을 때 홀로 방치돼 죽을 수밖에 없었던 스헤우츠헨코를 자신들의 집안에 들였고 이제는 러시아군 점령지인 마리우폴에서 피란 올 때도 같이 데려왔다.
남편 올렉산드르는 "이타주의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다"라며 "늘 웃고 따뜻이 안아주는 금 같은 마음의 스헤우츠헨코 덕분에 우리 가족의 삶이 더 좋아졌다"고 말했다.
sungji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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