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니, 선거 앞두고 강해진 이슬람주의…U-20 월드컵도 빼앗겨

입력 2023-03-30 12:15  

인니, 선거 앞두고 강해진 이슬람주의…U-20 월드컵도 빼앗겨
대통령 호소에도 여당·지지율 1위 후보, 이스라엘 보이콧 주장
국제대회 출전 금지 징계 받을 듯…"수천억원 손해"


(자카르타=연합뉴스) 박의래 특파원 = 인도네시아가 2023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 유치권을 박탈당하면서 현지에서는 내년 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이 이슬람주의에 편승하려다 유치했던 국제대회마저 빼앗기는 일이 벌어졌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30일(현지시간) 일간 콤파스 등에 따르면 FIFA는 전날 성명을 통해 인도네시아의 대회 개최권을 몰수하겠다며 새 개최국과 인도네시아 축구협회(PSSI)에 대한 잠정 제재안은 추후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인도네시아가 대회 개최권을 빼앗긴 것은 인도네시아 내 반이스라엘 정서 때문이다. 세계에서 무슬림이 가장 많은 국가인 인도네시아는 이슬람 형제국인 팔레스타인의 독립을 지지하며 이스라엘과는 외교관계도 맺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인도네시아 내 이슬람 최고 의결기관인 울레마협의회(MUI)와 인도네시아에서 두 번째로 큰 이슬람 단체인 무함마드야 등이 이스라엘 선수단 입국을 거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무슬림 극단주의 단체들은 이스라엘 선수단이 입국하면 이들을 납치하겠다고 협박하기도 했다.
이런 움직임에 편승해 기름을 끼얹은 것이 정치권이었다.
이슬람 정당들이 먼저 보이콧 운동을 펼쳤고 와얀 코스터 발리 주지사 등 이번 대회가 열릴 예정이었던 지역의 지자체장들도 반대 의견을 내기 시작했다.
조코 위도도(조코위)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스포츠와 정치를 혼동하지 말아달라"고 호소했지만, 여당인 투쟁민주당(PDI-P)마저 이스라엘 참가를 막아야 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여기에 차기 대통령 여론조사에서 1위를 달리는 간자르 프라노워 중부 자바 주지사도 성명을 통해 이스라엘팀 보이콧을 촉구했다.
'식민주의를 폐지해야 한다'는 인도네시아 헌법 정신에 이스라엘이 어긋나는 나라인 만큼 이들의 참가도 금지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또 FIFA가 우크라이나 전쟁을 이유로 러시아 축구팀의 국제대회 참가를 막은 것처럼 팔레스타인을 공격하고 팔레스타인 시민들의 인권을 침해한 이스라엘에 대해서도 같은 방침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당과 유력 대선 주자마저 이런 주장을 하자 PSSI도 FIFA와 이번 일을 논의할 때 이스라엘 선수단의 안전을 보장하겠다며 FIFA를 안심시키기보단 러시아 사례를 들며 이스라엘 선수단의 출전을 막아야 한다고 설득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움직임에 대해 자카르타 포스트는 사설을 통해 "선거를 앞두고 만연한 종교의 정치화가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인도네시아는 내년 2월 대통령과 국회의원, 지방의회 의원을 새로 뽑는 대규모 선거를 앞두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이슬람을 국교로 정하지 않고 있지만 국민의 80% 이상이 무슬림이다 보니 선거를 앞두고 이들의 이슬람주의가 강해지는 상황이다.
지난해에는 혼외 성관계를 금지하는 등 이슬람 색채가 강하게 반영된 형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면서 국제사회로부터 개인의 자유와 인권을 침해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인도네시아가 대회 유치권을 빼앗기면서 FIFA의 추가 징계도 피하긴 어려울 전망이다.
당장 신태용 감독이 이끄는 인도네시아 U-20 대표팀의 대회 출전권은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인도네시아는 1979년 대회 이후 44년 만에 개최국 자격으로 출전권을 얻었다.
또 정치권이 축구협회에 관여했다며 국제대회 출전 금지 등의 조치도 내려질 전망이다. 인도네시아는 2015년에도 정부와 정치권이 축구협회 행정에 간섭한다는 이유로 1년간 국제대회 출전을 금지당하는 등 자격 정지 징계를 받은 바 있다.
대회 준비를 위해 들어간 비용이나 대회 유치를 통해 얻었을 관광 수입이 사라지는 등 대규모 경제적 손실도 보게 됐다.
PSSI는 이번 대회를 준비하며 경기장과 인프라 구축 등을 통해 엄청난 돈을 쏟아부었다며 이번 일로 인한 경제적 손실이 수조 루피아(수천억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laecorp@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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