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한파에 삼성전자 14년만에 '최악' 성적표…25년만에 감산(종합2보)

입력 2023-04-07 15:06   수정 2023-04-07 15:11

반도체 한파에 삼성전자 14년만에 '최악' 성적표…25년만에 감산(종합2보)
1분기 영업익 95.8% 급감…분기 영업익 1조원 미만은 2009년 1분기 이후 14년만
반도체 4조원 안팎 적자 예상…"의미있는 수준까지 메모리 생산량 하향조정 중"
2분기 전망도 '흐림'…감산 기조 변화 속 업황 반등세 빨라질지 주목



(서울=연합뉴스) 장하나 기자 = 삼성전자[005930]가 주력인 메모리 반도체 업황 악화로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이 96%가량 쪼그라들며 1조원에도 못 미치는 '어닝 쇼크'(실적 충격)를 기록했다.
그동안 '인위적인 감산은 없다'는 기조를 유지했던 삼성전자는 "의미 있는 수준까지 메모리 생산량을 하향 조정 중"이라며 사실상 감산을 처음으로 공식 인정했다. 삼성전자가 감산을 공식화한 것은 1998년 이후 25년 만에 처음이다.

◇ 영업이익 6천억원 '털썩'…IT 수요 부진에 반도체 실적 악화
삼성전자는 연결 기준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이 6천억원으로 지난해 동기보다 95.75% 감소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고 7일 공시했다.
삼성전자의 분기 영업이익이 1조원대 이하로 주저앉은 것은 2009년 1분기(5천900억원) 이후 14년 만에 처음이다.
매출은 63조원으로 작년 동기 대비 19% 감소했다.
작년 하반기부터 시작된 반도체 수요 둔화에 따른 출하 부진과 가격 하락이 시장의 예상보다 더 심각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이는 증권가 전망치보다도 낮은 수준이다.
연합인포맥스가 최근 1개월 내 보고서를 낸 증권사 18곳의 컨센서스(실적 전망치)를 집계한 결과 삼성전자의 1분기 매출은 17.34% 감소한 64조2천953억원, 영업이익은 94.9% 급감한 7천201억원으로 예측된 바 있다.
시장에서는 올해 초만 해도 1조∼2조원대의 영업이익을 예상했으나, 작년 4분기 실적을 발표한 올해 1월 당시 전망보다 반도체 업황이 더 나빠지면서 눈높이가 이미 낮아진 상태다.
증권가에서는 통상 삼성전자 영업이익의 60∼70%를 차지하던 반도체 부문에서 4조원 안팎의 적자를 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는 작년 4분기에 이어 이번에도 설명 자료를 내고 "IT 수요 부진 지속에 따라 부품 부문 위주로 실적이 악화하며 전사 실적이 전 분기 대비 큰 폭으로 하락했다"며 실적 하락 배경을 짚었다.
삼성전자는 "메모리는 매크로 상황과 고객 구매심리 둔화에 따른 수요 감소, 다수 고객사의 재무 건전화 목적 재고 조정이 지속됐고, 시스템 반도체와 디스플레이(SDC)도 경기 부진과 비수기 영향 등으로 실적이 하락했다"고 설명했다.



◇ 업황 악화에 감산 돌입 공식화…"의미있는 수준까지 하향 조정"
특히 삼성전자는 이날 감산 돌입을 공식 인정했다.
삼성전자는 설명 자료에서 "이미 진행 중인 미래를 위한 라인 운영 최적화와 엔지니어링 런(시험 생산) 비중 확대 외에 추가로 공급성이 확보된 제품 중심으로 의미 있는 수준까지 메모리 생산량을 하향 조정 중"이라고 밝혔다.
그동안 난이도가 높은 선단 공정과 DDR5·LPDDR5 전환 등에 따른 생산 비트 그로스(bit growth·비트 단위로 환산한 생산량 증가율) 제약을 대비해 안정적인 공급력을 확보하는 데 주력했으나, 특정 메모리 제품은 향후 수요 변동에 대응 가능한 물량을 확보했다는 것이 삼성전자의 판단이다.
구체적인 감산 규모와 시기 등을 명확히 밝히지는 않았으나 업계에서는 DDR4를 중심으로 감산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이번 잠정 실적 발표를 앞두고 내부 회의를 통해 감산 관련 수위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예상보다 골이 깊은 반도체 업황과 현재 주가 등을 고려해 감산을 해야 한다는 입장과 회사의 미래 가치를 위해 기존 기조를 유지하고 경쟁업체와의 격차를 더 벌려야 한다는 입장이 엇갈렸으나 최종적으로 감산을 공식화하는 것으로 정리가 됐다.
시장 부진 등의 상황을 감안할 때 이미 미래 수요에 필요한 물량을 충분히 확보한 만큼 감산에 나서도 무방하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생산량과 재고량, 수율 예측 등의 시뮬레이션 결과 내린 결정"이라며 "이번 실적 악화와는 무관하게 사전에 계획된 전략적 감산"이라고 설명했다.



세계 1위 메모리 업체인 삼성전자가 마침내 감산에 동참하겠다는 입장을 밝힘에 따라 업계에서는 메모리 반도체 가격 하락세가 진정되고 업황 반등도 앞당겨질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앞서 삼성전자는 작년 4분기 콘퍼런스콜에서는 감산에 나설 것이라는 시장의 기대와 달리 "올해 시설투자(캐펙스·CAPEX)는 전년과 유사한 수준이 될 것"이라며 '인위적 감산은 없다'는 입장을 재확인한 바 있다.
다만 당시에도 설비 재배치 등 생산라인 최적화와 미세공정 전환 등을 통한 '자연적 감산' 여지는 남겼다.
실제로 시장에서는 이미 20%가량의 자연적 감산이 이뤄지고 있다고 보고 있다.
도현우 NH투자증권[005940] 연구원은 "일부 테스트·부품 업체에 의하면 1분기 삼성전자에서 수주한 물량이 30% 이상 감소했다"며 "삼성전자가 현재 보유한 D램 재고는 경쟁사와 비교해도 높은 21주를 웃도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의 2022년도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반도체를 담당하는 DS부문 재고는 2021년 말 16조4천551억원에서 지난해 말 29조576억원으로 76.6%(12조6천25억원) 급증했다.
작년 4분기 실적을 발표한 올해 1월 당시 전망보다 반도체 업황이 더 나빠진 만큼 삼성전자도 기존 '버티기 전략'을 유지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이미 감산에 나선 마이크론은 추가 감산도 시사했다. 마이크론은 최근 실적 발표에서 2023회계연도의 시설투자(CAPEX) 금액을 기존 '최대 75억달러'에서 '최대 70억달러'로 하향 조정해 제시했다.



◇ 반도체 4조원 적자 예상…갤럭시 S23 판매 호조로 MX 선방
이날 부문별 세부 실적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반도체를 담당하는 DS 부문이 4조원 안팎의 적자를 내며 사상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든 것으로 보인다. DS 부문은 작년 4분기에도 영업이익이 97% 급감한 2천억원대에 그치며 적자를 겨우 면했다.
특히 메모리 반도체는 작년 4분기 이미 적자 전환한 데 이어 1분기 들어 재고평가손실 확대와 평균판매단가(ASP) 하락이 이어지면서 적자 폭을 키웠을 것으로 보인다.
주요 고객사의 재고 축소 기조가 분기 내내 강하게 유지되며 D램과 낸드 모두 출하가 매우 부진했다.
SK증권[001510]은 1분기 말 기준 삼성전자의 D램 재고가 10주 후반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통상 업계의 적정 재고 수준이 3∼5주라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노근창 현대차증권[001500] 연구원은 "1분기 재고 자산 평가 손실은 2조원 중반을 웃돌 것"이라고 내다봤다.
여기에 파운드리 역시 주문량 감소로 가동률이 하락했을 것으로 예상된다. 디스플레이는 아이폰 출하량 감소 등의 여파로 지난해 동기보다 감소했을 것으로 보인다.
반면 갤럭시 S23의 판매 호조로 MX 부문은 모처럼 양호한 실적을 올리며 반도체의 부진을 일부 만회한 것으로 판단된다.
이밖에 영상디스플레이(VD)는 흑자를 낸 반면 가전은 여전히 영업 적자를 낸 것으로 예상된다.
IBK투자증권은 사업부별 영업이익을 반도체(DS) -4조4천410억원, 디스플레이(SDC) 5천640억원, 모바일(MX)·네트워크 3조7천490억원, 영상디스플레이(VD)·가전 2천140억원으로 추정했다.
한국투자증권은 DS -3조4천700억원, MX 3조2천600억원, SDC 7천700억원의 실적을 기록했을 것으로 예상했다.

◇ 감산 동참으로 수급 개선 앞당길까…"재고 소진 선행돼야"
문제는 2분기 전망도 어둡다는 데 있다.
메모리 가격은 역대급 수요 침체로 빠르게 하락하며 '현금 원가'(cash cost)에 근접하기 시작했다.
D램 고정가는 지난해 초 3.41달러에서 올해 1∼3월 1.81달러까지 하락했고, 낸드 고정가는 작년 1∼5월 4.81달러 수준에서 지난달 3.93달러까지 떨어졌다.



대만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D램 ASP는 1분기 20% 급락한 데 이어 2분기에도 10∼15% 하락할 전망이다.
트렌드포스는 공급업체 재고 수준이 높아 D램 ASP는 계속 떨어지고 있으며, 생산량이 크게 줄어야만 가격이 반등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메모리 반도체는 특성상 수요가 부진하더라도 공급이 수요를 밑돌 경우 가격 상승이 가능하다.
현재 메모리 업황에서는 가격 상승보다 출하량 증가에 따른 재고 소진이 선행돼야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록호 하나증권 연구원은 "2분기에는 계절적으로 출하가 증가하겠지만 증가 폭이 크게 나타나야 재고의 감소를 기대할 수 있는 상황"이라며 "상반기에는 고객사 재고 수준이 낮지 않고 서버 수요 강도도 강하지 않아 재고 감소 가능성이 낮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서승연 신영증권[001720] 연구원은 "계절적 성수기와 공급 축소 효과가 발현될 하반기부터 메모리 업황 회복이 예상되는 가운데 2분기 실적 저점 이후 분기 실적이 개선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다만 지난해 말부터 감산에 나선 SK하이닉스[000660]와 마이크론에 이어 삼성전자도 감산 행렬에 동참하면서 수급 개선 시점이 앞당겨질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된다.
도현우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이날 감산 발표에 대해 "수급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메모리 가격 하락세가 지속되겠지만 하락폭은 D램 -1%, 낸드 -1%로 크게 개선될 것으로 전망되며 메모리 재고도 2분기부터 감소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hanajjang@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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