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감산 동참한 삼성전자…수요 회복·재고 부담 해소 관건

입력 2023-04-09 06:01  

결국 감산 동참한 삼성전자…수요 회복·재고 부담 해소 관건
"메모리 생산량 하향 조정 중"…감산 규모·시기 등은 안 밝혀
"시장 심리가 바뀌어야"…2분기 실적 개선도 쉽지 않을 듯

(서울=연합뉴스) 장하나 기자 = 세계 1위 메모리 반도체 업계인 삼성전자[005930]가 25년 만에 '무(無)감산' 기조에서 입장을 선회, 글로벌 감산 행렬에 동참하면서 향후 메모리 업황 개선 시점이 앞당겨질지 주목된다.
시장에서는 하반기부터 감산 효과가 본격적으로 나타나며 메모리 가격 하락세도 진정 국면에 접어들 것으로 기대하고 있으나, 일각에서는 수요 회복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업황 반등이 쉽지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



◇ '인위적 감산 없다' 입장서 선회…가격 반등 기대
9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이미 진행 중인 설비 재배치 등 생산라인 최적화와 미세공정 전환, 엔지니어링 런(시험 생산) 비중 확대 등을 통한 '기술적 감산' 외에 인위적인 감산에 나선다.
앞서 삼성전자는 지난 7일 올해 1분기 잠정 실적을 발표하며 "공급성이 확보된 제품 중심으로 의미 있는 수준까지 메모리 생산량을 하향 조정 중"이라고 밝혔다.
그동안 시장의 감산 기대에도 '인위적인 감산은 없다'는 기조를 유지했던 삼성전자가 1998년 이후 25년 만에 처음으로 감산을 공식화하자 시장은 뜨겁게 반응했다.
발표 당일 삼성전자의 주가는 4.33% 급등한 6만5천원에 마감했다. 반도체 업황 개선 기대감에 SK하이닉스[000660]도 덩달아 6.32% 상승한 8만9천100원에 장을 마감했다.



통상 메모리 반도체는 수요가 부진해도 공급이 수요를 밑돌면 가격이 상승할 수 있다.
이달 초 주요 산유국들이 전격적으로 추가 감산을 예고하자 국제 유가가 급등한 것과 비슷한 이치다.
세계 1위 메모리 업체인 삼성전자가 감산에 동참하면 그만큼 공급이 줄어드는 만큼 시장이 가격 반등 시그널로 받아들인 것이다.
김영건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의 감산은 산업 전반에서의 파급력이 크며 경쟁사로 하여금 추가적인 감산 조치를 취할 수 있는 여력을 제공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현재 메모리 반도체 시장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 3사가 과점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대만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작년 4분기 글로벌 D램 시장에서 삼성전자의 점유율은 45.1%를 기록했다. 2위인 SK하이닉스와 3위 마이크론은 각각 27.7%, 23.0%의 시장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박정호 SK하이닉스 부회장은 지난달 주주총회에서 D램 업계가 처한 상황을 '죄수의 딜레마'에 비유하기도 했다.
이미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은 작년 말 감산에 들어갔다. 마이크론은 최근 추가 감산도 시사했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는 "감산하면 3개월 뒤에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하고 그다음 3개월 뒤에 본격적으로 효과가 난다"며 "마이크론과 SK하이닉스는 작년에 시작했으니 이미 감산 효과가 시작됐고, 삼성전자가 여기에 가세하면 하반기부터 감산 효과가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 "지금이 마지막 기회"라더니…점유율 격차 벌렸나
이번 감산 결정을 놓고 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1분기에 이미 감산에 들어간 두 업체와의 시장 점유율을 애초 목표한 만큼 벌린 것으로 판단했다는 해석이 나왔다. 아직 1분기 시장 점유율은 공개되지 않은 상태다.
삼성전자가 그동안 '버티기' 전략을 고수한 것은 상대적으로 강한 체력을 바탕으로 이번 기회에 경쟁업체와의 점유율을 벌리기 위한 포석이라는 게 지배적인 시각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경계현 삼성전자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장(사장)도 2월 1일 DS부문 임직원을 대상으로 한 경영 현황 설명회에서 "좁혀지는 경쟁력을 회복시킬 수가 없다"며 "지금이 어쩌면 마지막 기회"라고 말했다.



또 삼성전자가 "특정 메모리 제품은 향후 수요 변동에 대응 가능한 물량을 확보했다"고 밝힌 만큼 나중에 업황이 개선돼 수요가 증가하더라도 이를 감당할 수 있는 충분한 물량을 쌓아뒀다는 계산이 깔렸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이종환 상명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 교수는 "생산을 계속하기에는 재고가 많아서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지금 시기가 감산하기에 적절하다고 판단한 것"이라며 "올해 연말쯤에는 어느 정도 회복세가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단기 생산 계획을 하향 조정했다고 밝힌 만큼 감산 기간은 길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아직 재고 수준이 상당한 만큼 실제로 시장 분위기가 반등하려면 일단 이달 말로 예정된 콘퍼런스콜에서 구체적인 감산 규모나 시기 등이 확인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고영민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소극적 감산은 미미한 공급 축소 효과를 만들며 업황 부진이 장기화할 경우 경쟁사 대비 재고 증가 속도가 빨라지는 역효과도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 수요 시장 심리 변화해야…재고 부담 여전
일각에서는 수요 회복이 뒷받침되지 않은 상황에서 단순히 공급량을 줄이는 것만으로는 업황 개선이 힘들 정도로 이미 골이 깊다는 의견도 있다. 메모리 반도체 가격은 수요처와 공급처 간의 심리에 의해 만들어지는 만큼 시장 심리 변화가 동반돼야 한다는 것이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시장이 극적으로 변하려면 수요 시장이 바뀌어야 한다"며 "세트 제품 생산이 늘어나야 반도체 수요가 늘어나는데, 그게 아닌 상황에서 생산만 줄인다고 해서 반도체 시장이 극적으로 변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와 글로벌 인플레이션 등의 여파로 소비 심리가 살아나지 않고 있는 만큼 당분간 재고 부담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반도체를 담당하는 DS부문 재고는 2021년 말 16조4천551억원에서 지난해 말 29조576억원으로 76.6%(12조6천25억원) 급증했다.
김영건 연구원은 "현재 보유 재고의 절대량이 많아 연중으로 유의미한 수준까지의 감소는 어려울 수 있기에 계약가격 인상은 4분기는 돼야 가능할 것"이라며 "다만 재고의 정점 통과와 공급사의 감산 기조는 수요 측의 구매 심리를 자극할 수 있으며 이는 현물 가격 인상으로 선행 반영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 2분기 실적 저점 찍나…감산 효과 하반기 본격화 기대
이미 시장의 눈은 2분기를 향하고 있다.
다만 메모리 반도체 가격 하락세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데다, IT 수요 회복도 쉽지 않은 만큼 2분기 실적 개선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감산 동참에 따른 효과는 하반기에 본격적으로 가시화할 전망이다.
연합인포맥스가 최근 1개월 내 보고서를 낸 증권사 18곳의 실적 전망치를 집계한 결과 삼성전자의 2분기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96.01% 급감한 5천619억원으로 예측됐다. 매출 전망치는 17.27% 감소한 63조8천691억원이다.
연합인포맥스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1분기 3조8천108억원의 영업 적자를 내는 데 이어 2분기에도 3조4천713억원의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됐다.



도현우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의 실적 부진은 2분기에도 지속될 것"이라며 "메모리 가격 하락세가 지속하겠지만, 하락 폭은 D램 -1%, 낸드 -1%로 크게 개선되며 시장 컨센서스(-10∼-15%)보다 양호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서승연 신영증권 연구원은 "계절적 성수기와 공급 축소 효과가 발현될 하반기부터 메모리 업황 회복이 예상되는 가운데 2분기 실적 저점 이후 분기 실적이 개선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반면 노근창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2분기 모바일 영업이익은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메모리 반도체의 재고자산 평가손실이 줄어들 것이라는 점에서 업황이 추가로 악화하지 않는다면 1분기 대비는 개선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hanajjang@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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