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전 美차관이던 맬패스 현 총재 장남 입사하자 "왕자님 모셔라"
내부고발자 폭로…英가디언 "주요인사 특혜 이번 처음 아닌 듯"
(서울=연합뉴스) 황철환 기자 = 유엔 산하 국제금융기구인 세계은행(WB)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시절 미 재무부 고위 당국자의 아들에 대한 특별대우를 지시했다는 내부고발이 제기됐다.
문제의 고위 당국자는 당시 미 재무부 차관으로 재직하던 데이비드 맬패스 현 WB 총재라고 한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12일(현지시간) 내부고발자에게서 입수한 녹음을 인용, 2018년 한 직원회의에서 다음과 같은 대화가 오갔다고 보도했다.
회의에 참석한 WB 고위 간부는 "7월 16일부터 우리와 합류할 '왕자님'이 있다"면서 "이 젊고 명석한 인물은 우리가 증자를 받는데 도움이 될 미 재무부 차관의 아들이란 점을 미리 말씀드린다"고 말했다.
미 코넬대에서 경제학 학사학위 과정을 막 마치고 개발도상국 민간기업에 대한 투자를 담당하는 WB 산하 국제금융공사(IFC)에 리서치 애널리스트로 입사하는 것이 확정된 상태였던 맬패스 총재의 장남 로버트(당시 22세)를 언급한 것이다.
이 간부는 로버트를 '매우 중요한 어린 친구'로 취급해야 한다면서 그렇지 않아 일이 잘못되면 "아빠에게 뛰어갈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로버트가 석사 학위 등을 얻으려 학교로 돌아갈 가능성을 묻는 말에는 "성가시게도 그는 아마도 1년 혹은 2년간 머무른 뒤 어딘가의 헤지펀드로 옮길 것"이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그 2년간 우리는 그를 행복하고 가치 있게 만드는 동시에 그를 가르칠 필요가 있다. 그래야 내가 그의 아빠에게 갔을 때 보너스를 받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회의에 참석한 WB 당국자들은 당시 재무장관이었던 스티븐 므누신이 "일이 돌아가는 걸 거의 혹은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면서 재무부 차관이었던 맬패스 현 총재가 더 강한 영향력을 지녔다고 보는 듯한 태도였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또, 회의에서 "예전에도 우리에겐 '왕자님'이 있었다는 걸 기억하시라. 이건 특별 서비스(happy hour) 대상"이란 말이 나오기도 했던 점에 비춰볼 때 국제적 주요 인사의 친인척에 대한 WB의 특혜 지시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가디언은 강조했다.
해당 회의는 같은해 WB가 회원국을 대상으로 진행한 130억 달러(약 17조2천억원) 규모의 유상증자 계획을 미 재무부가 지지하고 나선 직후 이뤄진 것이라고 한다.
WB은 문제의 녹음파일 내용에 대한 확인을 거부하면서, 말단직원 채용과 수십억달러 규모의 증자에서 연관성을 찾는 건 "사실이 아니며 터무니 없는 이야기"라고 반박했다.
또, 로버트의 채용 과정에는 문제가 없었고, 2019년 4월 맬패스 현 총재가 취임하자 한 가족 구성원들을 동시 채용할 수 없다는 규정에 따라 로버트가 퇴직한 건 오히려 WB의 이해충돌 방지장치가 효과적으로 작동한다는 점을 보여준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가디언은 이번 내부폭로로 WB의 조직관리 실태와 관련해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게 됐으며, 맬패스 현 총재의 직무 수행과 관련해서도 더 큰 우려가 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 재무부 차관으로 일할 당시 WB 증자와 관련한 협상에서 주도적 역할을 한 맬패스 총재는 전임인 한국계 김용 총재가 트럼프 당시 미 대통령과 정책적 불화 등의 이유로 중도에 하차한 뒤 총재로 지명됐다.
WB 총재의 임기는 5년이며 연임이 가능하다. 하지만, 그는 조 바이든 행정부와의 불협화음 속에 올해 6월 말 조기 퇴진하겠다는 의향을 밝힌 상황이다.
녹음을 공개한 내부고발자는 "미국은 WB 최대 주주로서 이 기관의 지배구조 개선에 기여할 책임이 있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 특별대우는 직원들, 특히 승진 기회 부족에 시달리는 하급직의 사기를 무너뜨리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hwangc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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