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시리아 동반 사우디행…카타르·바레인도 관계정상화
'생지옥' 예멘내전 끝나나…중국 중재·MBS 득세에 미국 '초조'
(서울=연합뉴스) 장재은 기자 = 복잡하고 오랜 갈등이 지속된 중동 이슬람권이 급속한 화해 분위기에 접어들었다.
12일(현지시간) AFP, 로이터 통신 등 외신을 종합하면 이런 분위기의 중심지는 사우디아라비아다.
사우디는 이날 수도 리야드에서 이란 사절단, 제다에서 시리아 외무부 장관을 각각 맞이했다.
이슬람 수니파의 맹주 사우디가 앙숙인 시아파 맹주 이란과 친이란 국가인 시리아 대표를 반긴 것은 급변으로 평가된다.
리야드에 주재하는 한 아랍국 외교관은 AFP통신에 "이란인과 시리아인이 같은 날 사우디에 있다는 사실은 몇 달 전에는 상상도 못 할 일"이라고 말했다.
시리아 외교사절이 사우디를 방문한 것은 2011년 시리아에서 내전이 발발한 지 12년 만에 있는 일이다.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이 이끄는 시리아 정권은 내전 중에 자국민에게 저지른 잔혹 행위 때문에 국제사회에서 집단 따돌림을 당해왔다.
사우디 외교부는 화해를 통해 시리아를 다시 아랍 세계로 받아들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양국은 일단 그간 단절된 영사 서비스와 항공로를 복원하는 절차를 밟기로 했다.
사우디를 비롯한 아랍권 9개국은 14일 제다에서 회의를 열어 아사드 대통령을 다음 달 19일 아랍연맹 정상회의에 부르는 방안을 논의한다.
이란 정부에 따르면 이란과 최근 관계를 정상화한 사우디는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도 자국에 초대했다.
사우디가 이란 대통령을 맞이한 것은 2012년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의 지역행사 참석이 마지막이었다.
카타르와 바레인도 그간 껄끄러운 감정을 걷어내고 관계를 정상화하기로 이날 합의했다.
바레인은 사우디, 아랍에미리트(UAE), 이집트와 함께 2017년 카타르와 관계를 끊고 통상과 왕래를 중단한 바 있다.
카타르가 자국들에 위협이 되는 이슬람 운동을 지원한다는 의혹과 함께 라이벌 시아파 국가인 이란과 가까워진다는 게 그 사유였다.
바레인은 다른 걸프국들이 2021년 1월 제재를 해제했지만, 내정이 불안해질 가능성을 우려해 관계 단절을 지속했다.
수니파 군주가 통치하는 바레인은 자국 무슬림 중 시아파 비율이 70%에 달해 카타르와 이란의 관계를 경계해왔다.
중동의 이 같은 해빙무드는 이슬람권 진영 다툼의 두 축이던 사우디와 이란이 지난달 10일 관계 정상화에 전격 합의한 뒤 급물살을 탔다.
사우디와 이란은 2016년 사우디가 시아파 종교 지도자 셰이크 님르 바크르 알님르를 처형하고 이에 반발한 이란 시위대가 사우디 외교 시설을 공격한 사태를 계기로 외교관계를 단절했다.
지난달 관계 정상화 발표 뒤 사우디, 이란은 중국에서 외교장관 회담을 갖고 사우디 실무관료가 이란 테헤란을 방문하는 등 후속 조치를 서둘렀다.
중동 이슬람권의 화합 시도는 지구촌을 대표하는 '생지옥'으로 불리는 예멘, 시리아 내전이 해결될 가능성과 맞물려서도 주목받는다.
사우디는 이란과의 화해에 이어 예멘의 친이란 반군인 후티와 내전 종식을 두고 협상에 들어갈 방침이다.
예멘 내전은 2011년 '아랍의 봄' 민주화 운동의 여파로 인한 정치적 불안 속에 후티가 예멘 정부를 2014년 수도 사나에서 몰아내며 시작됐다.
사우디는 후티가 예멘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을 막기 위해 2015년부터 예멘 내전에 군사적으로 개입해왔다.
그 과정에서 민간인을 포함한 사상자 규모가 커지고 예멘의 빈곤 수준이 극도로 악화해 사우디는 국제사회의 비판에 시달렸다.
전문가들은 사우디 실세인 무함마드 빈살만(MBS) 왕세자가 석유 의존도가 높은 자국 경제구조를 재편하는 등 내정에 더 집중하려고 예멘에서 발을 빼고 있다고 관측한다.
이슬람권, 극단주의 테러 집단, 미국, 러시아까지 군사적으로 개입해 아수라장이 된 시리아 내전도 해결 실마리를 찾을지 기대된다.
사우디 외무부는 시리아 외무장관의 방문과 관련해 "시리아 위기의 완전한 정치적 해결을 위해 필요한 조치를 논의했다"고 밝혔다.
시리아 내전은 '아랍의 봄'에 따른 정치적 불안 속에 2011년 촉발됐으며 국토 대부분이 초토화하며 50만∼60만명이 죽었다는 추산이 나돈다.
미국은 중동의 화해 분위기를 공식적으로는 반기고 있지만 불편하고 조심스러운 기색이 역력하다.
국제무대에서 전략적 경쟁국인 중국이 사우디와 이란의 화해를 중재했다고 자처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사우디와 이란의 관계 정상화 발표는 중국의 중재로 이뤄졌고 양국 외교장관은 보란듯이 베이징에서 후속 회담을 열었다.
예멘과 시리아 내전은 세계 경찰을 자부해온 미국이 수년간 해결에 실패한 난제인 만큼 국면이 바뀐다면 중국의 위상이 달라질 수 있다.
미국은 '시리아 학살자'로 규탄해온 아사드 정권이 아랍권에 시리아의 공식 대표자로 다시 포용되는 분위기도 불편하기 짝이 없다.
이슬람권 22개국으로 구성된 아랍연맹은 자국민 학살 들어 아사드 정권을 경멸하면서도 시리아를 계속 따돌리는 게 지정학적으로 이롭지 않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란과 러시아의 비호를 받는 아사드 정권은 그간 미국에 타협이 불가능한 상대였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아사드 대통령을 제거하지 않겠으나 그 정권을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고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화학무기 사용에 책임을 물어 시리아를 폭격하기도 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시리아에 대한 아랍연맹 정상회의 초대는 중국과 러시아 같은 국가가 불안정한 지역에서 미국의 영향력에 도전하는 가운데 사우디 왕세자의 외교적 장악력을 과시하기 위해 기획된 것"이라고 맥락을 해설했다.
jangj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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