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대부분 2030 사회초년생…'지원대책 해당 無'에 빈손으로 돌아가기도
(서울=연합뉴스) 김치연 기자 = 19일 서울 강서구 화곡동 주택도시보증공사(HUG) 전세피해지원센터.
상담이 시작되는 오전 10시가 되자마자 첫 민원인이 문을 열고 들어섰다. 손에 임대차 계약서 등 피해를 증빙할 각종 서류가 담긴 파일을 꼭 든 채 어두운 표정이었다.
인터넷으로 상담 예약을 하고 온 이 남성은 센터 한쪽에 마련된 공간에서 초기 상담을 시작했다.
접수 신청서에 희망 프로그램과 임대차 계약정보, 권리관계, 피해 사실 등을 적어 담당 직원에게 전달하고 3분여간 기다리자 직원이 '법무사 상담'으로 민원인을 안내했다. 곧바로 상담이 진행됐다.
전세피해지원센터는 국토교통부가 관계 부처 합동으로 발표한 전세사기피해방지대책 후속 조치로 작년 9월 28일부터 시범 운영되고 있다.
전세 피해자에게 유형별 대응 방안을 상담하고 법률·주거·금융서비스를 종합적으로 제공해 조속한 피해 회복을 돕고자 마련됐다.
HUG 직원 12명과 변호사 1명, 법무사 2명, 공인중개사 1명이 상주하며 방문상담과 전화상담을 한다. 평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하루 평균 30∼40건의 상담이 이뤄진다.
문을 연 이후 이달 12일까지 4천160명이 센터를 이용했고, 법률상담, 법무지원단 풀 제공, 긴급주거 지원상담, 긴급 금융지원상담, 전세사기피해접수 등의 프로그램에 8천500여건의 신청이 접수됐다.
센터 관계자는 "작년 말과 올해 초 전세사기 관련 보도가 많이 나온 후부터 상담 건수가 늘었다"며 "최근에도 꾸준히 전화·방문 상담을 신청하는 분들이 늘어나는 추세"라고 말했다.
첫 상담이 진행되는 동안 곧이어 또 다른 민원인들이 10분 간격으로 들어왔다. 대기표를 뽑고 긴장된 표정으로 기다리는 이들은 대부분 20·30대 사회초년생으로 보였다.
이날 센터를 방문해 공인중개사에게 상담받은 김모(28) 씨 또한 이번에 계약한 집이 생애 첫 전셋집이었다. 김씨가 사는 같은 건물에서만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세입자가 최소 6명이라고 한다.
김씨는 "전입신고도 하고 확정일자도 받았다. 임대인 보증보험 가입을 계약 조건으로 특약까지 걸었지만, 집주인이 보험에 가입한 것처럼 위조 문서를 제시해 감쪽같이 속았다"며 "뒤늦게 알아차리고 보증보험에 가입하려 했을 때는 이미 집주인이 악성 임대인으로 등록돼 가입할 수 없었다"고 토로했다.
그는 "상담을 받기 전에는 경매를 신청해서 이 집을 떠안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는데, 상담에서 소송 비용 등을 고려하면 소유권 이전 형태로 집을 매매하는 게 낫다는 조언을 받아 그 점도 고려해보려고 한다"며 "내년 결혼을 앞두고 있는데 보증금을 건질 수 있을지 걱정이 크다"고 했다.
상담을 받아도 뚜렷한 해법을 찾지 못하고 돌아가는 경우도 있었다. 현재까지 발표된 전세사기 피해 지원 대책에 해당하지 않아서다.
이른바 '빌라왕' 피해자 A(39)씨는 피해 사실을 알게 된 작년 8월부터 힘든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법무사를 선임해 경매를 신청했지만 경매 물건이 쌓여있는 탓에 수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기일조차 잡히지 않았다고 한다.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전셋집의 전세자금대출 이자는 4% 중반으로, 매월 원리금 상환에만 70만원 가까이 든다. 이자라도 줄일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궁금해 센터 문을 두드렸지만, 전세 피해임차인 버팀목전세자금 대출은 현재 사는 거주지가 아닌 신규 거주지만 가능해 이용할 수 없다는 안내를 받았다.
A씨는 "보증금을 돌려받기 전까진 지금 사는 집을 점유해야 하는데, 이사를 해야만 버팀목 전세자금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실효성이 떨어진다"며 "센터에서 전세 피해자 대상 지원책을 상세하게 알려줬지만 결국 지원받을 수 있는 게 없다는 점만 확인한 셈"이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한편 정부는 전국에서 전세사기 피해가 이어지자 관련 대책을 내놓고 있다. 국토부는 이날 관련 기관과 긴급 대책회의를 열고 전세피해지원센터가 직접 피해자를 찾아가 상담하도록 기능을 강화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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