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 선전 금지법' 강화 여파로 볼쇼이 발레단 공연서 빠져
(서울=연합뉴스) 황윤정 기자 = 러시아의 반(反) 동성애 정책으로 자국 출신의 전설적인 발레리노 루돌프 누레예프의 일생을 그린 발레 작품이 세계적인 발레·오페라 극장인 볼쇼이극장에 오르지 못하게 됐다.
19일(현지시간) AP통신과 영국 일간지 가디언 등에 따르면 모스크바의 볼쇼이극장이 동성애자로 알려진 누레예프의 삶을 조명한 현대 발레 '누레예프'를 공연 목록에서 뺐다.
이는 러시아에서 '동성애 선전 금지법'이 강화되는 등 동성애 혐오 정책 수위가 높아진 데에 따른 것이다.
지난해 11월 러시아 하원을 통과한 이 법은 성소수자의 라이프 스타일을 조장하는 것으로 간주되는 것에 대한 금지 조치를 확대했을 뿐 아니라 미디어 등에서 성소수자의 행동을 보여주는 것도 제한했다.
1961년 옛 소련에서 서방으로 망명한 누레예프의 일생을 담은 '누레예프'에는 누레예프가 동성 연인에게 애정을 표현하는 장면이 들어가 있다.
블라디미르 우린 볼쇼이극장 총감독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비전통적 가치 조장과 관련된 문제가 명확하게 규정된 이 법에 따라 '누레예프'를 공연 작품 목록에서 뺐다"고 밝혔다.
러시아의 유명 영화감독이자 연극 연출가인 키릴 세레브렌니코프가 안무한 이 작품은 그간 러시아에서 우여곡절을 겪어왔다.
2017년 12월 초연됐지만 불과 몇 달 뒤 당시 러시아 문화부 장관이 이 작품을 '동성애 선전물'이라고 비판한 뒤 무대에 오르지 못했다.
지난해 다시 공연 일정이 잡혔지만 세레브렌니코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를 공개 비판하면서 공연이 돌연 중단됐다.
세레브렌니코프는 볼쇼이 발레단 공연작에서 '누레예프'가 빠지자 자신의 텔레그램 계정에 성소수자를 상징하는 무지개와 함께 "'이 범죄적인 법'은 이 작품과 여러 책을 구체적으로 겨냥해 통과됐다"고 비판하는 글을 올렸다.
전통적 정교회 국가인 러시아에선 여전히 성소수자 문제에 대해 보수적 시각이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지난해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 정부는 서방이 진보적 젠더 개념이나 동성애를 강요하고 있다며 이에 맞서 자국의 전통적 가치와 정체성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도 지난해 성소수자 권리 운동에 대해 '악마주의'의 문을 여는 움직임 가운데 하나라고 강하게 비난한 바 있다.
yunzhe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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