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피해자 금융지원 '속도전'…"근본대책 아냐" 한계도

입력 2023-04-20 16:16  

전세사기 피해자 금융지원 '속도전'…"근본대책 아냐" 한계도
LTV·DSR 한시적 완화…보금자리론 저리 공급·채무조정도
'빚 늘리기'가 향후 피해 가중할수도…상호금융권 추가 부실화 우려도 제기


(서울=연합뉴스) 신호경 임수정 기자 = 금융당국이 20일 전세사기 피해자에 대한 신속하고 적극적인 금융 지원을 강조하며 다양한 방안을 내놨다.
은행권도 전세 사기 피해자의 이자율을 조정하고 낮은 금리로 대출해주는 등의 대책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다만 이런 대책들이 '시간 벌어주기'나 '빚 늘리기' 효과에 그치는 만큼, 실효성 있는 근본적 대책이 조속히 나와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 금융당국 "LTV·DSR 한시적 완화"…정책상품 특별 공급
금융당국은 우선 전세사기 피해자들을 대상으로 주택담보대출비율(LTV)과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등 가계대출 규제를 적용하지 않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국토교통부가 파악한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 주택 2천479세대가 우선 규제 완화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비규제지역인 인천 미추홀구 다세대 주택에 대한 LTV는 70%다.
소득 기준 대출 규제인 DSR은 총대출액이 1억원을 초과하면 40%(비은행권 50%)가 적용되고 있다.
금융당국은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새로운 집을 매수하거나 경매로 피해 주택을 낙찰받으려 할 경우 완화한 대출 규제 기준이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LTV나 DSR의 기본 취지를 고려하고 원칙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전세사기 피해자의 안정적 주거 지원을 위해 한시적으로 규제 완화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이날 오전 관계 기관이 참여한 '전세사기 피해자 금융지원 유관기관 회의'도 열어 채무조정이나 정책상품 저리 대출 등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기로 했다.
시중금리보다 낮은 고정금리로 주택 매매 자금을 빌려주는 특례보금자리론 금리를 추가로 더 낮춰 제공하거나, 전세금 원리금 상환이 어려운 경우 특례채무조정을 적용하는 방식 등이 거론된다.
금융감독원은 이날부터 전세사기 피해 주택 및 경매 상황에 대한 밀착 모니터링에도 돌입했다.
앞서 금융당국은 시중은행과 저축은행, 신협, 새마을금고, 대부업 등 전 금융권과 함께 전세 사기 피해자의 거주 주택에 대해 자율적 경매·매각 유예 조치를 추진하기로 한 바 있다.
이날 경매 기일이 도래한 32건 중 28건이 연기, 4건이 유찰됐다.


◇ 새마을·신협 이자율 감면…우리은행 5천300억 지원
미추홀구 전세사기 관련 대출이 집중된 상호금융권도 이자율 조정에 나서고 있다.
새마을금고와 신협은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자사에 전세대출이 있을 경우 이자율 감면에 나설 계획이다.
피해자들이 현재 사는 주택을 낙찰받으려 할 경우 대출도 최대한 지원하기로 했다.
은행연합회와 주요 시중은행들도 지난 18∼19일 잇따라 임원급, 실무진 회의를 열어 전세사기 피해 주택 경매·매각 유예 조치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은행연합회 관계자는 "전세사기 피해가 집중된 빌라 등에 대한 은행권 주택담보대출 사례가 많지 않지만, 은행이 선순위 채권(대출)을 보유한 경우 금융당국이 권고한 대로 6개월 이상 경매·매각을 유보한다는데 큰 이견이 없었다"고 전했다.
은행권은 이밖에 '상생' 차원에서 전세사기 피해자에게 낮은 금리로 대출해주는 등의 금융지원도 검토하고 있다.
당장 우리은행은 피해 가구당 최대 1억5천만원 한도(보증금 3억원 이내)의 전세자금, 새집 구매에 필요한 2억원 한도의 주택구입자금 등을 대출해주고 금리도 최초 1년간 2%포인트(p) 깎아주기로 했다.
우리금융그룹은 이 '주거 안정 프로그램'의 지원 규모가 5천300억원에 이른다고 밝혔다.
다른 은행들도 이미 지난해 말과 올해 초에 걸쳐 전세사기 피해가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자 주택도시보증(HUG) 전세대출 만기 최장 4년 연장, 전세사기 피해 임차인 대상 연 1%대 금리의 버팀목전세자금 대출 등의 지원책을 내놨으나 사태가 더 커진 만큼 추가 지원이 가능한지 고민하는 분위기다.


◇ '급한 불 끄기' 한계…상호금융권 추가 부실화 우려도
피해자들에 대한 경매 중단이나 금융 지원 확대 등의 조치가 이제라도 나온 것에 안도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시간 벌어주기'나 '급한 불 끄기' 성격인 만큼 대책의 한계도 분명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금융당국과 금융권 지원이 근본적으로 '대출을 더 내어주는 것'이기 때문에 피해자들의 고통을 근본적으로 덜어주는 방안은 아니라는 분석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DSR 규제는 소득에 비례해 빚을 내준다는 측면에서 금융소비자 보호를 위한 것"이라며 "사정이 어려운 분들의 경우 향후 불어난 빚 감당이 더 어려워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한 부동산 경기 하강 국면에서 빌라 등 다세대주택 가격은 빠르게 내려가고 있어 향후 경매 때 낙찰가가 더 낮아지고 피해자 회수액이 더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상호금융권 부실화 및 연체율 증가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새마을금고 등 일부 금융권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우려가 커진 상황에서 경매 유예 조치 등으로 부실 채권 비율이나 연체율이 더 높아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도 이날 회의에서 "피해자 분들께 잠시의 시간은 벌어드렸지만 이 시간이 헛되이 지나가지 않도록 주거·생계 등을 포함한 다양한 정책적 지원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금융당국 관계자는 "경매 유예 조치와 함께 전세사기 피해자를 실질적이고 궁극적으로 구제하기 위해 관련 부처 등과 함께 다각적인 지원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전했다.
shk999@yna.co.kr, sj9974@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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