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사우디·프·브라질 정상과 대화…美와 외교·군사대화 재개 거부
"中, 타국과 관계 강화·유럽 분열 등 더 힘 얻고 나야 美 상대할 것"
(서울=연합뉴스) 김지연 기자 =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세계 각국 정상과 바삐 만나며 관계를 다지는 가운데 미국을 냉대하면서 대립각을 명확히 세우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2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시 주석은 지난 14일 중국을 방문한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을 '중국 인민의 오랜 친구'라고 치켜세웠고, 지난 6일 방중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정원에서 차를 마셨다.
지난달 말에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실권자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와 통화하며 이슬람 단식 성월 라마단을 잘 치르기를 기원했다.
미국이 중국과 고위급 회담 재개와 양안 갈등 완화를 시도하는 데 중국이 냉담한 반응을 보이는 것과 상반된다.
지난 2월 방중 계획을 짰다가 정찰 풍선 갈등으로 인해 방문을 무기한 연기한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최근 다시 방중을 추진하고 있으나 중국이 이를 거부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또한 중국은 지난해 8월 낸시 펠로시 당시 미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 이후 미국과의 군사 대화를 대부분 중단했는데, 미 국방부는 중국 정부가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 마크 밀리 합참의장과의 접촉을 거절해왔다고 지난주 밝힌 바 있다.
오히려 중국은 미국이 주도하는 서방 민주주의에 대한 비판을 늘리고 있다.
표면상 미국의 주요 동맹국들은 이런 시 주석의 외교적 노력을 그대로 받아주지는 않는다. 서방 선진국 중심의 주요 7개국(G7)은 지난 16∼18일 일본에서 열린 외교장관 회의에서 양안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촉구하는 등 중국을 견제하는 공동성명을 채택했다.
그러나 중국이 최근 국제무대에서 보여온 행보는 미국의 영향력 저하를 일부 가시적으로 드러낸 것으로 평가된다.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은 방중 전후로 공개적으로 미 달러 패권에 도전했고,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은 '미국에 끌려다니지 않는 자율적인 유럽'을 강조했다.
이 틈을 놓칠세라 중국 관영 매체들은 미국 패권의 '위험'이나 '남용'을 비판하고 미국의 인권·인종주의·총기 폭력부터 최근 미 정부 기밀문서 유출 사태까지 조명하면서 미국식 민주주의의 '허점'을 공격하고 있다.
중국의 입장은 차이잉원 대만 총통의 방미와 케빈 매카시 미 하원의장과의 회동, 대만의 미 지대함미사일 400기 구매, 미국과 필리핀의 대규모 합동 군사훈련 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더욱 강경해진 모습이다.
또한 미국이 대중국 반도체 수출을 규제하고 일본, 한국, 호주, 인도 등 중국 주변국들과 안보 관계를 강화하면서 중국은 더욱 분개하고 있다.
시 주석의 표현에 따르면 미국이 중국에 대해 '봉쇄와 포위, 억압' 정책을 펼치면서 양국 관계가 수십년 만의 최악으로 떨어진 가운데 중국이 한층 더 강경해진 태도를 보이는 것이라고 NYT는 진단했다.
중국 입장에서는 미국이 정상간 통화를 비롯한 외교 접촉을 재개하자고 요청해 봤자 '적대행위'나 '도발행위' 앞에서 공허하게 들릴 뿐이라는 것이다.
동시에 미·중 관계가 대만 등 지정학 갈등 지역에서 최악의 경우 전쟁과 같이 위험한 상황으로 이어질 위기에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고 이 매체는 전했다.
중국 관영 매체들은 미국이 "구체적 행동으로 신뢰할 만한 진정성을 보여줄 때" 고위급 회담이 가능할 것이라고 전했다.
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최근 미중 대화 재개와 블링컨 장관의 방중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 "현재 중국과 미국간 관계의 어려움은 중국 책임이 아니다"라고 답했다.
전문가들은 현재로서는 시 주석이 지금 당장 조 바이든 미 대통령과의 대화에는 실익이 없고 협상에서 우위를 점할 만큼 영향력을 키운다는 판단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관측한다.
미국 싱크탱크 민주주의수호재단(FDD)의 크레이그 싱글턴 중국 선임 연구원은 "(중국에) 대화의 시간은 지나갔고, 위험한 상황에 대비하는 시간"이라고 말했다.
민신 페이 클레어몬트 매케나 대학 교수는 "중국은 강한 위치에서 미국과 접촉하기를 원하지만 지금은 분명 그 위치에 있지 않다"며 "어쨌든 미국이 동맹을 규합해 중국에 대한 기술 전쟁을 벌이는 데 성공했으니 중국보다 훨씬 강력하고 가용할 도구가 더 많다는 뜻"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중국이 더 많은 힘을 얻었다는 생각이 들 때 미국을 상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는 브라질과 같은 비동맹 국가들과 관계를 다지거나 유럽에서 대중국 전략에 분열이 일어난 이후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cheror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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