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신계, 2000년대 선거 전승…이번에는 막내딸 내세워
(방콕=연합뉴스) 강종훈 특파원 = 그는 15년째 해외 도피 생활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태국 정치판을 쥐락펴락한다. 선거철이 되면 존재감은 더 커진다.
태국 현대 정치사를 뒤흔든 인물이자 지금도 태국 정치의 핵심인 탁신 친나왓 전 총리다.
2000년대 이후 태국 정치는 탁신을 중심으로 흘러왔고, 지금도 그의 그늘 속에 친(親)탁신, 반(反)탁신 세력이 대립하고 있다.
통신재벌 출신인 탁신은 2001년 총선에서 총리 자리에 올랐고, 2005년 총선에서 압승을 거둬 연임에 성공했다. 그러나 2006년 쿠데타로 축출됐고, 2008년 부패 혐의 재판을 앞두고 해외로 도피했다.
탁신계 정당은 2001년 이후 선거에서 한 번도 패한 적이 없다. 모든 선거에서 가장 많은 의석을 차지했다.
농민과 도시 빈민층 등을 중심으로 한 이른바 '레드 셔츠' 계층은 계속 그를 그리워하며 탁신의 분신 격인 후보와 정당에 표를 몰아준다.
다음 달 14일 총선을 앞두고도 어김없이 탁신이 소환됐다. 제1야당 프아타이당의 총리 후보인 패통탄 친나왓이 그의 막내딸이다.
가족 소유 사업을 운영하며 정치와는 무관한 삶을 살던 패통탄은 탁신의 후광으로 순식간에 유력 주자가 됐다.
패통탄은 36세 정치 신인이지만 각종 여론조사에서 차기 총리 후보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다.
해외 생활 내내 탁신은 막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하지만 군부를 중심으로 한 기득권 세력의 탁신 견제는 계속됐고, 시민사회도 둘로 갈라져 싸워왔다.
2008년에는 탁신의 매제 솜차이 옹사왓이 총리로 선출됐다. 그러나 헌법재판소의 집권당 해체 판결로 3개월도 못 돼 내각이 총사퇴했다.
다음은 탁신의 여동생인 잉락이었다. 사업가인 잉락 역시 정치 경력이 거의 없었지만 2009년 태국 첫 여성 총리가 됐다.
이번에도 '해피엔딩'은 아니었다. 2014년 헌법재판소가 권력 남용을 이유로 해임 결정을 내렸고, 정치적 혼란 속에 군부가 쿠데타로 정권을 잡았다.
탁신계가 정권을 잡았다가 법원 판결이나 군부 쿠데타 등으로 무너지고, 다시 선거에서 탁신계가 승리하는 상황이 되풀이되고 있다.
이번 총선도 크게 다르지 않다. 탁신을 대신하는 딸 패통탄이 총리 후보로 나선 프아타이당이 무난히 제1당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패통탄이 아버지, 고모부, 고모에 이어 총리가 될지는 불확실하다. 2017년 개정한 헌법에 따라 군부가 임명한 상원 250명이 총리 선출에 참여하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군부 측의 협조 없이 정권을 잡기 힘든 구조적인 한계다. 이 때문에 이번 선거를 앞두고 탁신계인 프아타이당과 친군부 정당 팔랑쁘라차랏당(PPRP)의 연대설이 나돌고 있다.
최근 다시 반정부 민주화 시위가 일어나고 개혁 성향 전진당(MFP)의 지지도가 오르고 있지만, 현재의 제도와 정치 구도에서 새로운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결국 다가오는 총선은 군부 세력의 수성, 탁신 가문의 부활, 아니면 군부와 탁신계의 결탁 중 하나로 귀결될 것으로 보인다.
태국 정치에 새바람을 일으킨 탁신의 등장 이후 20여년이 흘렀지만, 태국의 민주주의 시계는 멈췄거나 거꾸로 가는 듯하다.
태국은 국왕의 권력이 절대적이고 1932년 이후 19번의 쿠데타를 일으킨 군부의 힘도 막강하다. 대부분 불교도인 국민들은 기존 질서에 순응하는 정치 문화를 가지고 있다.
이에 정치적 변화가 더디다는 평가도 있지만 한편에서는 변화를 향한 움직임도 이어져 왔다.
기득권에 반기를 들며 포퓰리즘 정책으로 농민과 도시 빈민층의 인기를 얻었던 탁신은 스스로 또 다른 기득권 세력의 길을 가고 있다.
교착 상태에 빠진 태국 정치가 바뀌려면 그 출발점은 군부는 물론 탁신의 그늘에서도 벗어나는 것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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