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퇴거명령서 발부…"건물 관리 부실, 무단으로 유료 투어 진행"
(로마=연합뉴스) 신창용 특파원 = 미국 태생의 이탈리아 왕자비가 지난 20년간 살아온 로마의 대저택에서 20일(현지시간) 쫓겨났다고 일간지 '코리에레 델라 세라'가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리타 옌레테 본콤파니 루도비시(73) 왕자비는 이날 로마의 '빌라 아우로라'에서 경찰의 입회하에 애완견 푸들 4마리와 함께 퇴거했다.
리타 왕자비는 자신의 소셜미디어(SNS) 동영상에서 "지난 20년 동안 사랑스럽게 돌봐온 집에서 잔인하게 쫓겨났다"며 "불법이고 불필요한 퇴거"라고 말했다.
이어 "누군가는 내가 여자이고 미국인이기 때문이라고 말했지만 난 잘 모르겠다"며 "분명한 것은 이 모든 게 돈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지난 1월 로마 법원은 외벽 일부가 무너져 내리는 등 건물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리타 왕자비에게 퇴거 명령서를 발부했다.
법원은 또한 리타 왕자비가 당국의 허가를 받지 않고 무단으로 저택 유료 투어를 진행한 점도 퇴거 사유로 들었다.
리타 왕자비가 퇴거 명령에 불응하자 로마 당국은 이날 경찰을 동원해 강제 집행에 나섰다.
그는 이와 관련해 로이터 통신과 인터뷰에서 유료 투어는 저택 유지보수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기획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1570년 건립된 이 저택은 대지 2천800㎡(약 847평) 규모로, 십자가 모양의 6층짜리 건물과 넓은 정원으로 이뤄져 있다.
그레고리오 13세 등 교황 2명을 배출한 루도비시 가문이 1621년 별장으로 사들인 이후 지금까지 소유하고 있다.
이 저택에는 바로크 미술의 거장인 카라바조가 1597년 완성한 천장화 '목성, 해왕성, 그리고 명왕성'이 있다.
카라바조가 남긴 유일한 천장화로, 법원이 평가한 그림 값은 3억1천만 유로(약 4천520억원)에 달한다.
저택에는 이 천장화 외에도 미켈란젤로의 조각 등 거장들의 작품이 곳곳에 전시돼 있다.
리타 왕자비는 루도비시 가문의 후손인 니콜로 본콤파니 루도비시 왕자의 세 번째 아내다. 이탈리아에서는 왕정이 폐지됐지만 유서 깊은 왕가의 피를 이어받은 니콜로 본콤파니 루도비시는 왕자로 불렸으며 그의 부인도 왕자비로 통칭했다
니콜로 왕자는 2009년 결혼하면서 그에게 평생, 이 저택에 살 수 있게 하고 만약 저택이 팔릴 경우 첫째 부인 사이에서 낳은 아들 셋과 수익을 나누도록 했다.
니콜로 왕자가 2018년 숨진 뒤 리타 왕자비는 의붓아들들과 상속 분쟁을 벌였다.
로마 법원이 저택을 매각해 수익금을 나눠 가지라고 판결하면서 저택이 경매에 나오는 운명을 맞았다.
이 저택은 지난해 1월 4억7천100만 유로(약 6천868억원)를 시작가로 경매가 진행됐지만 입찰자가 없어 유찰됐다.
계속된 유찰 속에 오는 6월 30일로 예정된 다음 경매의 시작가는 1억4천500만 유로(약 1천114억원)로 크게 낮아졌다.
법원은 이탈리아 문화유산법에 의해 보호되는 이 건물을 매입한 사람은 복원 비용으로 1천100만 유로(약 160억원)를 추가로 내야 한다고 명령했다.
리타 왕자비는 최근 젠나로 산줄리아노 문화부 장관에게 이 저택을 정부가 구입하면 좋겠다는 뜻을 전달했다고 이탈리아 뉴스통신사 안크로노스가 전했다.
시민사회계에서도 정부가 문화재급 가치를 지닌 이 저택을 사들여 복원·보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본명이 리타 카펜터인 리타 왕자비는 미국 텍사스에서 태어나 배우와 방송기자로 활동하다가 부동산 사업에 뛰어들었다.
부동산 사업을 통해 니콜로 왕자와 인연이 닿은 그는 결혼 뒤 이탈리아로 이주해 이 저택을 복원하는 데 남은 평생을 바쳤다고 말했다.
changy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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