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매체 "중러, 지정학적 압박 속 문화 교류 강화"
(홍콩=연합뉴스) 윤고은 특파원 =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서방에서 외면당한 러시아 연주자들이 국경을 재개방한 중국으로 몰려들고 있다.
23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러시아 출신 세계적인 지휘자 발레리 게르기예프가 이끄는 상트페테르부르크 마린스키 극장 오케스트라는 지난달 27∼29일 베이징에서 공연했다.
게르기예프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관계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비판 거부로 지난해 뮌헨 필하모닉에서 퇴출됐다.
이번 베이징 공연은 그 이후 게르기예프의 첫 해외 공연이다.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에 따르면 게르기예프는 베이징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마치 집에 온 것 같다. 행복하고 영광스럽다"면서 러시아 음악에 반대하는 것은 러시아인이 바흐나 모차르트에 반대하는 것처럼 바보 같다고 말했다.
지난달 대만에서 열릴 예정이던 러시아 소프라노 안나 네트렙코의 공연은 비판 여론 속에 직전에 취소됐다.
그는 앞서 지난해 3월 푸틴 대통령에 대한 공개 지지를 철회하라는 뉴욕 메트로폴리탄(메트)의 요청을 거부하다 오페라 출연 기회를 박탈당했다.
대만 문화부는 네트렙코의 공연을 취소한 주최측의 전문적 자율성을 존중한다면서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대만의 입장은 모호한 부분이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후 네트렙코는 홍콩에서 환영을 받으며 공연했다.
러시아 정부의 지원을 받는다는 이유로 미국과 유럽 공연이 취소된 볼쇼이 발레단은 올해 7월부터 내년까지 중국 투어를 계획하고 있다고 관영 통신 신화사가 보도했다.
또 러시아 첼라빈스크 발레단은 오는 6월 상하이에서 '백조의 호수'와 '안나 카레니나'를 공연할 예정이며, 같은 달 상트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닉은 베이징·톈진·우한·창사·상하이를 도는 공연을 펼칠 예정이다.
SCMP는 "서방의 보이콧과 제재에 직면해 많은 러시아 예술가가 중국 무대로 눈을 돌리고 있다"며 "전문가들은 팬데믹 기간 중단됐던 중국과 러시아 간 문화 교류가 지정학적 압박 속에서 양국 관계를 강화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펼쳐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주러시아 중국 대사관은 지난달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모스크바 방문 직후 두 나라가 더 많은 문화 행사를 함께 마련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동중국사범대 장신 부교수는 SCMP에 문화 교류가 중국과 러시아 간 외교 의제 일부라며 양국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에서 상호 지지와 협력을 모색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중국이 전쟁에 반대하는 예술가나 반전 메시지 공연을 초청하지 않을 것임은 꽤 확실하다"고 덧붙였다.
모스크바 국립국제관계연구소의 안나 키리바 부교수는 많은 러시아 연주자가 서방과의 관계를 예전과 같은 수준으로 유지할 수 없게 되면서 비서방 국가들에서의 공연을 이전보다 더 많이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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