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시큰둥'…"백악관, 마크롱 멋대로 행보에 짜증"
주불 중국대사 '구소련국에 주권 의문' 발언은 결정타
(서울=연합뉴스) 장재은 기자 = 중국의 도움을 받아 우크라이나전을 중재하려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노력이 거듭 타격을 받고 있다.
협상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미국의 태도가 비관적인 데다가 중국마저 서방과의 접점을 거부하는 강성발언을 쏟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마크롱 대통령은 중국과 협력해 올해 초여름까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협상의 틀을 마련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는 마크롱 대통령이 지난 5∼7일 중국을 찾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우크라이나전을 주요 의제로 논의한 뒤에 나온 결실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이 같은 방안은 미국, 유럽연합(EU) 회원국,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NATO) 동맹국들 사이에서 즉각 반발을 샀다.
우크라이나가 점령지를 되찾는 탈환전을 본격 개시하는 민감한 국면에서 협상을 섣불리 입에 올림으로써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서방국들의 단일대오를 흔들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특히 서방진영의 우크라이나전 대응을 진두지휘하는 미국에서는 마크롱 대통령의 제안을 불쾌하게 여기는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 20일 전화 통화로 중국의 우크라이나전 중재안을 논의했다.
대화의 내용을 전한 백악관과 엘리제궁, 양국 대통령실의 성명을 보면 방점은 다른 곳에 찍혀있었다.
엘리제궁은 두 정상이 우크라이나전을 끝내는 데 중국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데 동의했다며 이를 성명의 맨 위에 배치해 강조했다.
반면 백악관은 공통의 가치, 번영,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규칙에 기반을 둔 국제질서를 증진할 방안을 논의했다고만 밝혔다.
이는 국제 규범을 어기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서방동맹이 같은 자세로 연대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할 때 미국 정부가 자주 사용하는 어구다.
오히려 백악관은 중국과 대만 사이에 있는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할 중요성을 재확인했다고 짐짓 강조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방중 뒤 언론 인터뷰에서 유럽의 대외정책이 미국을 추종한다는 점을 경계하며 '대만 수호가 국익이 아니다'는 취지의 발언을 내놓아 파문을 일으킨 바 있다.
블룸버그 통신은 바이든 행정부의 속내를 잘 아는 소식통을 인용해 "백악관은 마크롱이 미묘한 외교적 문제에 대해 동맹국과 상의 없이 마음대로 행동한다고 보고 짜증이 난 상태"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소식통들은 마크롱이 평화 청사진을 꺼냈다가 철회할 수밖에 없던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며 "중국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의향이 없다는 게 분명하고 마크롱이 이번에 더 나은 성과를 얻을 가능성은 작다"고 지적했다.
앞서 마크롱 대통령은 작년 초 우크라이나전 발발 직전에 푸틴 대통령을 말리겠다며 독자 행보에 나섰다가 아무 성과를 내지 못한 채 푸대접을 받고 귀국한 적도 있었다.
마크롱 대통령의 중국 중재론을 무색하게 할 결정적인 사건은 프랑스에서 터져 나왔다.
루사예 주프랑스 중국대사는 지난 21일 프랑스 TF1 방송 인터뷰에서 "구소련 국가들조차 국제법상 유효한 지위가 없다"며 "그들의 주권국가 지위를 구체화한 국제적 합의가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루 대사는 2014년 러시아가 강제 병합한 크림반도가 우크라이나의 영토이냐는 질의에 "그 문제를 어떻게 인지하느냐에 달려있다. 그것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크림반도는 애초 러시아 영토였다"고 답변했다.
이 같은 중국의 입장은 러시아의 침공을 주권국 영토 침해라는 유엔 헌장 위반으로 보고 규탄하고 제재까지 가하는 서방에 일절 받아들여질 수 없는 주장이다.
블룸버그 통신은 루 대사의 발언 때문에 에마뉘엘 본 외교정책 고문과 중국 외교 사령탑인 왕이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의 대화를 통해 향후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협상 토대를 만들려는 마크롱 대통령의 노력이 근원적으로 손상된다고 해설했다.
과거 소련에 속했고 현재는 유럽연합(EU) 회원국이자 나토 동맹국인 발트 3국은 이번 사태에 격분해 중국 대사를 불러 항의하고 발언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jangje@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