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라왕' 63억원 체납에 막힌 피해주택 경매 가능해진다

입력 2023-04-26 06:10  

'빌라왕' 63억원 체납에 막힌 피해주택 경매 가능해진다
전세사기 피해지원 특별법에 '조세채권 안분' 담기로



(서울=연합뉴스) 박초롱 기자 = 집주인의 수십억원 세금 체납 탓에 경매를 통한 피해 회복 방법마저 막힌 전세사기 피해자들에게 다소 숨통이 트일 전망이다.
정부가 체납 임대인에 대한 조세채권(세금 징수 권리)을 임대인이 보유한 모든 부동산에 고르게 배분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이렇게 하면 서울 강서구 일대에 주택을 1천200채 가까이 보유하다 사망한 '빌라왕' 김모(42) 씨로 인해 피해를 본 이들의 주택 경매가 가능해진다.
26일 정부 부처 등에 따르면 국민의힘과 정부는 오는 27일 발의할 전세사기 피해지원 특별법안에 임대인의 조세채권 안분 방안을 담기로 했다.
임대인이 10억원의 세금을 체납했고, 보유주택이 100채라면 주택마다 1천만원씩 조세채권을 쪼개 배분한다는 것이다.
'빌라왕' 김씨의 경우 많게는 30억원짜리 조세채권이 쪼개지지 않고 덩어리로 있어 인천 미추홀구 피해자들과 달리 임차인이 선순위 채권자인데도 수개월째 경매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경매를 진행해도 세금을 먼저 가져가면 채권자에게 돌아가는 돈이 한 푼도 없어 법원이 '무잉여 기각' 처리를 하기 때문이다.
거주하는 집이 경매나 공매로 넘어가도 임차 보증금을 세금보다 먼저 변제받을 수 있도록 한 정부 대책은 다수의 '빌라왕' 피해자들에겐 '그림의 떡'이다.
세입자가 확정일자를 받은 이후 부과된 집주인의 세금(법정기일 기준)이 우선 변제 대상이기 때문이다.



임차인 상당수는 김씨에게 이미 거액의 종부세가 부과된 상황에서 전세 계약을 맺었다.
무자본 갭투기 방식으로 주택을 1천200채 가까이 매집한 김씨에게는 ▲ 2020년 12월 11일 2억5천만원 ▲ 2021년 11월 19일 60억원(납부기한 2021년 12월 30억원, 2022년 6월 30억원)의 종부세가 고지됐다.
빌라왕 피해대책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철빈 씨는 간발의 차이로 62억8천만원의 종부세 조세채권이 전부 거주 주택에 걸리게 된 사례다.
이씨는 2021년 10월 보증금 2억1천만원에 전세계약을 맺고 같은 해 11월 19일 전입신고를 했다. 확정일자 효력은 11월 20일 0시부터 발생했다. 그런데 효력 발생 바로 전날 집주인 김씨에게 종부세 60억원 부과가 고지됐다.
피해대책위는 이런 김씨의 체납 세금 때문에 경매도 할 수 없는 피해자가 200명 수준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같은 빌라왕 피해자 백이슬 씨는 2020년 11월 전세계약을 하고 확정일자를 받아 한 달 차이로 체납 세금 문제는 피했다.
백씨는 "집주인이 집을 몇채를 보유했는지, 그로 인해 종부세가 얼마나 나올지 세입자가 어떻게 알 수 있겠느냐"며 "모르고 당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정부는 체납자의 재산을 압류·매각해 가장 먼저 처분된 재산부터 매각 대금을 차례차례 세금으로 거둔다.
경매가 진행된다 해도 현행법대로라면 피해 주택이 먼저 낙찰된 임차인은 선순위 채권자임에도 세금에 밀려 보증금을 한 푼도 챙기지 못하고, 세금 63억원이 모두 충당된 이후 거주 주택이 낙찰된 임차인은 보증금을 어느 정도 회수할 수 있어 형평성에 문제가 생긴다.



이철빈 씨는 "법정기일이 가장 빠른 조세채권이 2억5천만원인데, 경매시장 침체로 피해 주택 대부분의 낙찰가가 2억5천만원에 못 미칠 가능성이 크다"며 "경매를 해도 남는 게 없기 때문에 법원에서 자체적으로 경매를 취소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피해자들은 그간 지속적으로 조세채권 안분을 요청해왔다.
조세채권 안분은 더불어민주당 조오섭 의원이 대표발의한 전세사기 피해 지원 특별법안에도 포함된 내용이다.
이강훈 참여연대 부집행위원장(변호사)은 "국세를 거둬야 한다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지만, 이를 특정 주택에서 몽땅 받아 가는 방식은 문제"라며 "주택 가액 등 기준을 세워 조세채권을 안분해야 한다"고 말했다.
피해자 이씨도 "피해 임차인들의 이해관계가 결코 국가와 다르지 않다"며 "조세채권이 큰 단위로 뭉쳐있으면 국가로서도 환수가 어렵기 때문에 쪼개는 것을 요구해왔다"고 말했다.
chopark@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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