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리 장기대출 특혜 제공…잇단 금리 인상에 파국
미국 내 '2번째 큰 은행 파산' 오명으로 막 내려
(서울=연합뉴스) 김기성 기자 = 최근 2개월 사이 미국에서 3번째로 문을 닫은 퍼스트리퍼블릭 은행은 성장의 동력이던 부유층 상대 영업이 결국 부메랑으로 돌아와 파산했다는 분석이 이어지고 있다.
실리콘밸리를 품은 샌프란시스코를 거점으로 한 퍼스트리퍼블릭 은행은 부유층과 고소득층에 특화해 의존하던 영업이 잇단 금리 인상으로 직격탄을 맞았다고 CNN방송과 블룸버그 통신 등 미국 언론이 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 은행은 부유층과 고소득층 고객을 상대로 저리의 장기 대출을 제공하고, 예금 보호를 받지 못하는 거액의 예금을 다수 유치해 성장해 왔는데 이게 독이 됐다는 지적이다.
보도에 따르면 1985년 설립된 이 은행은 부유층 고객이나 사업체든 엘리트 고객들에게 의존해 성장을 해왔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이 은행은 연봉 수십만 달러의 엔지니어를 유치하기 위해 구글 등 빅테크(거대 정보기술 기업)와 거래했고, 저리의 장기주택담보대출도 제공했다.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도 고객이었다.
이런 전략에 지역 고소득자들은 은행을 찾아 고가 주택을 산다며 다른 곳이라면 수용하기 어려운 고액의 대출을 요구하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은행 측은 고신용 고소득자에게는 10년 동안 원금은 그대로 두고 이자만 내게 하는 식의 영업방식도 동원했다.
팬데믹 기간에도 부동산 거래를 통해 고수익을 노리는 부유층의 대출 수요가 치솟으면서 지난 4년간 은행 자산은 배가 됐다고 블룸버그통신은 전했다.
저금리 시대를 맞아 이 전략이 성공하면서 2021년까지 10년간 이 은행의 연간 수익은 4배로 증가했고, 20대 은행에 포함될 정도로 성장 가도를 달렸다.
그러나 이 전략은 이 은행이 유치한 예금 중 연방예금보험공사(FDIC)가 예금 보호를 해주는 25만 달러(약 3억4천만원)를 초과하는 부분이 68%에 달할 정도로 잠재적 리스크를 짊어지게 했다.
보스턴칼리지의 법학교수인 패트리샤 매코이는 CNN 방송에 "이들 예금주가 특히 (위기에) 도화선을 촉발한 부분이 있다"며 영리한 그들은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 돈을 재빨리 다른 곳으로 옮겼다고 말했다.
결국 지난해부터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급격한 기준금리 인상이 이어지면서 부유층을 겨냥한 장기 저리 대출은 은행을 파국으로 이끌었다.
대형은행들의 긴급 지원 등으로 위태위태하게 연명하다 지난주 초 공개한 올해 1분기 실적 공개로 사실상 결정타를 맞았다. 1분기에만 예금의 40% 이상, 즉 1천억 달러(약 134조 원)가량이 빠져나갔다는 소식은 예금 보유액을 더 줄이는 계기가 된 것이다.
이 은행을 인수한 JP모건의 경우 예금주들을 다변화하고 있다. 즉, 예금 보호를 받는 25만 달러 이하를 예치한 고객들이 훨씬 더 많았고, 이들은 위기에도 뱅크런(대규모 예금 인출)에 나서지 않았다.
퍼스트리퍼블릭 은행은 예금의 약 3분의 2가 예금 보호를 받지 못해 앞서 파산한 실리콘밸리 은행의 94%보다는 덜했다.
하지만 S&P 글로벌(S&P Global)에 따르면 퍼스트리퍼블릭 은행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예대율(loan-to-deposit ratio)이 111%로 예금보다 대출이 더 많았다.
블룸버그 통신은 이 은행이 미국 역사상 2번째로 큰 은행의 파산 기록을 세우게 됐다고 전했다.
cool21@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