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여파로 물가 26% 이상 뛰고, 빈곤율 5.5%서 24%로 치솟아"
(서울=연합뉴스) 유철종 기자 =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의 한 전당포 '보물'에 40세 여성 올렉산드르가 재봉틀을 찾으러 왔다. 이곳을 찾는 모든 이들처럼 그는 자신의 성을 밝히지 않았다.
지난해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을 때 소규모 회사의 회계사로 일하고 있었던 그는 전쟁으로 회사가 문을 닫으면서 해고됐고, 한동안 생활을 지탱해주던 예금마저 동나면서 갖고 있던 물건을 저당 잡히는 신세가 됐다.
최근에야 간신히 일자리를 얻은 그는 재봉틀을 되찾았지만, 함께 맡겼던 핸드폰은 끝내 되돌려 받지 못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1년 이상 지속되는 가운데 심각한 빈곤 문제가 주민들의 삶을 곤경으로 몰아넣고 있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이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자신이 아끼는 재봉틀과 핸드폰까지 전당포에 맡겨야 했던 올렉산드라의 사례는 여전히 많은 사람이 불안정한 삶을 이어가고 있는 우크라이나의 깊어지는 빈곤 위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보물 전당포 직원 올렉산드르 스테파노프는 많을 때는 하루에 약 50명이 휴대전화와 가전제품 등을 맡긴다고 소개했다.
그에 따르면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보통 2주 안에 물건을 되찾으러 오지만 절반 정도의 사람들은 그러지 못하는데 약정 시일이 지나면 맡겨진 물건들은 팔려 버린다고 귀띔했다.
물건을 저당 잡혀 생활비를 마련할 처지도 못 되는 사람들은 빵을 구하기 위해 교회 등 구호단체들이 마련한 무료 급식소를 찾고 있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전쟁 초기 심각한 피해를 입었던 키이우 인근 도시 이르핀에서 한 개신교 교회가 운영하는 6곳의 구호소는 연일 사람들로 붐빈다.
이곳에선 무료로 빵을 배급하고, 중고 신발·옷가지·어린이 장난감 등의 생필품도 무료로 나눠준다.
구호소 테이블에서 중고 물품들을 뒤적이며 유아용 기저귀와 우유를 찾던 30세 여성 베로니카 프라빅은 전쟁을 피해 가족과 함께 6개월 동안 스페인으로 피난 갔다가 돈을 다 써버린 뒤 지난해 가을 우크라이나로 돌아온 사연을 털어놨다.
그는 "전쟁 때문에 모든 물건값이 올랐고, 그나마 일을 하고 있는 남편의 월급도 구매력이 떨어졌다"면서 "우리가 이렇게 힘들게 살 줄은 상상도 못했다. 모두가 고통받고 있다"고 토로했다.
현지 경제학자 올레나 빌란은 "우크라이나가 지금은 접근이 불가능한 항구들을 통해 상품의 80%를 수출해 왔기 때문에 (전쟁 이후) 국내총생산(GDP)이 30%나 감소했고, 소비자물가상승률은 26%에 달했으며, (현지통화) 흐리우냐 가치는 20%나 떨어졌다"고 전했다.
그는 국제사회가 약속한 430억 달러(약 57조원)의 외부 지원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상황은 훨씬 더 나빠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세계은행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우크라이나의 빈곤율은 5.5%에서 24.2%로 뛰었고, 약 710만 명이 추가로 빈곤층에 포함됐다.
세계은행의 동유럽 담당 이사 아룹 바네르지는 "지난해 말 우크라이나의 비공식 실업률이 36%에 달했고, 인플레율은 26%가 넘었다"면서 "빈곤율이 더 치솟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cjyou@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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