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캐나다 등 12개국 원주민 정치인 등 대관식 앞두고 서한
"발견자 우선주의도 이젠 부인하라" 촉구
(서울=연합뉴스) 권수현 기자 = 영연방 국가의 원주민 지도자들이 대관식을 앞둔 찰스 3세 영국 국왕에게 과거 영국의 식민 지배에 대한 공식적인 사과와 왕실 재산을 이용한 배상 등을 요구했다.
4일(현지시간) 영국 일간지 가디언에 따르면 영연방 소속 12개 국가의 원주민 정치인과 유력인사 등은 찰스 3세에게 '사과, 배상, 유물과 유해의 반환'이라는 제목의 서한을 보내 이같이 촉구했다.
이들은 서한에서 "우리는 찰스 3세 영국 국왕이 즉위일인 5월 6일에 맞춰 과거 원주민과 노예에 대한 대량학살 및 식민지배가 미친 끔찍한 영향과 그 잔재를 인정하길 촉구한다"고 적었다.
이어 찰스 3세가 지난해 6월 영연방 정상회의에서 과거의 잘못을 인정한 것에 대해 "(그런 대화를 할) 때가 온 것"이라며 "(국왕은) 노예제가 아직도 끼치는 영향에 대한 대화를 즉각 시작하라"고 말했다.
원주민 지도자들은 또 새 국왕에게 "원주민 억압·자원 약탈·문화 폄하에 대한 배상을 논의하고, (원주민들로부터) 훔쳐 와 왕실을 떠받쳐 온 부를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겠다는 약속을 해 달라"고 강조했다.
이들은 또 영국박물관 등지에 있는 유해와 보물, 유물은 영국 왕실의 비호 아래 권한을 위임받은 당국이 수백 년간의 집단학살과 노예화, 차별, 인종차별을 통해 강탈한 것이라며 반환을 요구했다.
서한은 아울러 최근 프란치스코 교황이 '발견자 우선주의'(Doctrine of Discovery)를 공식 거부한 것을 언급하면서 영국 왕실도 이를 인정하고 동일한 입장을 채택할 것을 촉구했다.
발견자 우선주의는 새로운 영토의 소유권이 이를 발견한 국가에 귀속된다는 개념으로, 15세기 교황 칙령 등에 의해 확립돼 서구 제국주의 국가의 식민지 수탈을 정당화하는 바탕이 됐다.
교황청은 3월 30일 발표한 성명에서 발견자 우선주의에 대해 "가톨릭교회의 가르침이 아니다"라고 선언했다. 교황청은 또한 "당시 교황 칙령은 원주민의 동등한 존엄성과 권리를 적절히 반영하지 못했다"면서 잘못을 인정했다.
찰스 3세에게 발송된 이번 서한에는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파푸아뉴기니, 자메이카, 앤티가 바부다, 바하마, 벨리즈, 그레나다, 세인트빈센트 그레나딘, 세인트키츠 네비스, 세인트루시아 등 12개 국가의 대표들이 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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