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투업계 "진짜 피해자는 왜곡된 가격에 투자해 피해본 사람"
(서울=연합뉴스) 송은경 기자 = 주식시장을 뒤흔든 SG증권발(發) 폭락 사태로 손실을 본 투자자들이 피해를 주장하고 있으나 이들을 모두 대규모 증권범죄의 피해자로 볼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미등록 H투자컨설팅업체 대표 라덕연(42) 씨의 주가조작을 어느 정도로 인지하고 있었느냐에 따라서 투자자들도 공범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7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라씨를 주축으로 한 주가조작 의심 세력은 시중 유통량이 적은 종목들을 장기간에 걸쳐 사들이는 방식으로 주가를 인위적으로 부양한 의혹을 받고 있다.
이들은 투자자를 모집한 뒤 투자자들로부터 휴대전화와 신분증을 넘겨받아 증권사 계좌를 개설한 뒤 사전에 정해진 시점·가격에 주식을 사고파는 통정매매를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또 먼저 돈을 맡긴 투자자에게는 정산해주고, 이 투자자가 다른 투자자를 끌어들이는 방식의 피라미드식 다단계 구조를 활용한 것이라는 의심도 받고 있다.
이런 방식으로 주가를 끌어올린 것으로 의심되는 종목들은 지난달 24일부터 차액결제거래(CFD)의 반대매매 등에 따라 폭락하면서 라씨에게 투자한 이들이 대규모 손실을 입었다.
다만 라씨의 말을 믿고 투자한 모든 이들을 피해자로 볼 수는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의견이다.
김정철 법무법인 우리 변호사는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이 사건은 다단계 금융사기 구조가 있고 라씨가 투자자들에게 레버리지(차입)를 일으키는 부분을 알리지 않는 등 일부 혐의에 대해서는 사기 피해자로서 의미는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렇지만 주가조작과 관련해선 순수 피해자로 보기 어렵고 자신들이 주가조작이 이뤄져 큰 이득을 취할 거라는 인식 하에 투자했다면 그 인식의 정도에 따라서는 피해자가 아니라 공범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역시 "통정매매가 있었다는 점을 알거나 알 수 있었다면 피해자가 아니라 공범이 될 가능성이 열려있다"고 했다.
그는 "라씨가 정상적인 투자라고 이야기하고 투자자들을 기망해 처음부터 작정하고 손해를 끼치려는 생각으로 H투자자문업체를 만들었다면 그건 사기"라며 "그에 해당한다면 사기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고 짚었다.
승 연구위원은 "그에 해당하지 않는다면 그냥 투자일 뿐이고, 투자의 손실은 개인의 몫"이라며 "심지어 라씨가 통정매매를 한다는 걸 알고 투자일임을 했다면 피해자도, 투자 실패자도 아니고 이 사건의 공범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이번 기회에 투자의 '자기 책임' 원칙을 되새겨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기업에 대해 전문적인 지식이 있는 증권사 애널리스트가 작성한 보고서에서는 대개 면책 고지(disclaimer)가 붙어 있다.
대부분 "당사 리서치센터가 신뢰할 만한 자료로부터 얻은 정보로 작성된 자료지만 정확성을 보장할 수 없으며 고객의 투자 결과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모든 투자는 전적으로 당사자의 판단에 따라 이뤄져야 하고 그에 대한 책임도 본인이 져야 한다는 것이다.
증권업계 한 인사는 "일부 투자자들은 H사에 휴대전화와 증권사 계좌를 아예 넘겨줬다고 하는데 경악스러운 일"이라며 "이 사태의 진짜 피해자는 아무것도 모른 채 괜찮은 종목이라고 생각하고 왜곡된 가격에 투자했다가 하한가 사태에 손실을 본 사람들일 것"이라고 말했다.
nor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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