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작년 급진적 헌법 국민투표 부결 이어 리더십 타격
(멕시코시티=연합뉴스) 이재림 특파원 = 칠레 좌파 집권당에서 적극적으로 추진했던 새 헌법이 지난해 국민투표에서 부결된 후 다시 구성된 제헌 의회 성격의 헌법위원회에 이번엔 우파 성향 의원들이 대거 포진했다.
8일(현지시간) 칠레 일간지 엘메르쿠리오와 라테르세라 등에 따르면 6∼7일 치러진 헌법위원회 선거에서 우파 성향 후보들이 줄줄이 입성했다.
1천515만572명의 유권자 중 1천285만8천452명(투표율 84.87%)이 참여한 선거에서 공화당은 35.40%의 득표율로 전체 51석(원주민 1석 포함) 중 23석을 차지했다.
또 다른 우파 계열 '안전한 칠레'도 21.07%의 득표율로 11석을 얻었다. 두 정당 의석수를 합치면 34석으로, 의결에 필요한 31석을 넘어섰다.
반면, 가브리엘 보리치(37) 대통령 소속 정당인 좌파 계열 '칠레를 위한 연합'은 28.59%의 득표율로 16석 확보에 그쳤다.
이는 원주민과 무소속 등 진보적 성격의 인물로 꾸려진 2021년 제헌의회와는 구성원 측면에서 완전히 바뀐 것이다. 이에 따라 이들이 내놓을 헌법 초안도 보수적인 색채를 띨 가능성이 높다.
이번 위원회는 앞선 의회에서 만들었던 헌법이 지난해 국민투표에서 압도적인 반대(61.9%)로 부결되면서 다시 꾸려졌다.
당시 칠레 국민들은 급격한 사회 변화를 강제하는 성격의 헌법 조항 등에 대해 "충분한 여론 수렴의 시간이 없었다"며 크게 반발한 바 있다.
지난해 국민투표 부결에 이어 이번 선거 참패로 보리치 대통령은 리더십에 큰 타격을 입게 될 것으로 보인다.
'세계에서 가장 젊은 지도자'로 꼽히는 그는 지지율 하락으로 부심하는 상황에서 몇 차례 중도적 성향의 인사로 내각을 개편하는 등 분위기 쇄신에 안간힘을 썼지만, 민심을 돌아서게 하진 못한 것으로 보인다.
2021년 대선에서 보리치에게 패했던 호세 안토니오 카스트(57) 공화당 대표는 이번 선거 결과에 대해 "우리 국민들은 보리치 정부의 무기력과 무관심에 대해 준엄한 심판을 내렸다"며 "칠레의 새로운 시작"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헌법 위원들은 24명의 전문위원이 작성한 초안에 대해 논의를 거쳐 11월 6일까지 새 헌법을 내놓을 예정이다. 변호사와 언론인, 학자 등으로 포진된 전문위원은 상·하원 승인을 거쳐 선임된 상태다.
헌법 통과 여부를 결정할 국민투표는 12월 17일 시행할 계획이다.
칠레 국민들의 새 헌법 요구는 2019년 10월 사회 불평등 항의 시위로 촉발됐다.
수도 산티아고 지하철 요금 인상에 대한 반발로 조직된 시위에서는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군부독재 시절(1973∼1990년)인 1980년에 제정된 현행 헌법을 폐기하라는 목소리가 높아졌고, 2020년 국민투표에서 78%의 국민이 피노체트 헌법 폐기와 새 헌법 제정에 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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