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피해' 캐럴 옛 사진보고 前부인과 헷갈려해
외신 "취향 아니어서 성폭행 불가능하다는 방어논리 깨져"
(서울=연합뉴스) 황윤정 기자 = 도널드 트럼프(76) 전 미국 대통령이 9일(현지시간) 27년 전 성폭행 의혹 관련 소송에서 진 결정적 요인으로 "그녀는 내 스타일이 아니다" 등 그의 발언과 영상 증언이 지목됐다.
뉴욕 남부연방지방법원 배심원단은 패션 칼럼니스트 출신 E. 진 캐럴(79)이 트럼프 전 대통령을 상대로 낸 민사소송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500만달러(약 66억2천만원)를 지급해야 한다고 평결했다. 배심원단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캐럴을 성추행했으며, 이 혐의를 부인하는 과정에서 캐럴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판단했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영상 증언이 패소에 이르게 한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약 2주에 걸친 재판 기간 법정에 출석하지 않았고 영상 증언으로 무죄를 주장했다.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재판을 앞두고 영상 증언을 할 때 원고인 캐럴과 자신의 첫번째 부인 이바나 등이 함께 찍힌 사진을 보며 "저건 말라예요. 제 아내"라고 말했다.
사진 속 캐럴을 두번째 부인 말라 메이플스로 잘못 본 것이다. 옆에 있던 트럼프 전 대통령의 법률팀이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사진 속 여성이 메이플스가 아니라 캐럴이라고 알려줬을 정도였다.
캐럴 측 변호인단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캐럴을 전 부인으로 오인한 것은 캐럴이 자신의 스타일이 아니라는 그의 말이 거짓말임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소송 전부터 캐럴이 자신의 취향이 아니기 때문에 성폭행했을 수 없다는 주장을 펴왔다. 2019년 성폭행 의혹이 처음 불거졌을 당시 "그 여자(캐럴)는 내 스타일이 아니다.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날 배심원단의 평결이 나온 뒤에도 SNS를 통해 "그 여자가 누군지 전혀 모른다. 이번 평결은 역사상 최악의 마녀사냥이자 (미국의) 불명예"라며 자신의 주장을 고수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또 48분간 녹음된 영상 증언에서 캐럴이 한 인터뷰를 거론하면서 "그녀는 그것을 좋아했다. 강간당하는 것은 매우 섹시했다. 그녀(캐럴)가 그렇게 말하지 않았느냐"고 주장하기도 했다고 텔레그래프는 전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스타가 되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취지로 한 과거 발언도 소환됐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공화당 대선 후보였던 2016년 공개된 연예매체 '액세스 할리우드' 2005년 녹음 파일에는 "스타면 여성의 XX를 움켜쥐어도 괜찮다" 등의 트럼프 전 대통령 음성이 담겼다.
캐럴 측 변호인이 "스타면 여성의 XX를 움켜쥘 수 있다는 게 사실이냐"고 묻자 트럼프 전 대통령은 영상 증언에서 "지난 백만년을 돌아보면 대체로 사실이다. 불행하게도 또는 다행스럽게도"라고 답했다.
'자신을 스타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는 "그렇게 말해도 될 것 같다"고 했다.텔레그래프는 백악관 복귀를 위태롭게 할 수도 있는 이번 소송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이 같은 영상 증언이 "자신의 변호를 무너뜨리는 데 일조했다"고 분석했다.
yunzhe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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