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중매체 빈과일보 사주의 영국 변호사 선임 제동
(홍콩=연합뉴스) 윤고은 특파원 = 홍콩 당국이 국가 안보 사건에 외국인 변호사의 참여 여부를 금지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이 10일 홍콩 입법회(의회)를 통과했다.
이에 따라 홍콩 국가 안보 관련 사건의 변호를 맡고자 하는 외국인 변호사는 앞으로 홍콩 행정수반인 행정장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사실상 외국인 변호사의 참여를 금지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홍콩 언론에 따르면 폴 찬 홍콩 법무장관은 이날 새로운 시스템이 외국인 변호사의 홍콩 재판 참여와 국가 안보 수호 사이에 적절히 균형을 이룰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찬 장관은 새로운 법이 후퇴라는 지적을 일축하면서 "많은 다른 사법권은 외국인 변호사가 국가 안보 재판에 참여하도록 허용하지 않을 뿐더러 그러한 즉석 참여 허용 시스템도 갖추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일부 의원은 행정장관에 외국인 변호사의 참여 허가권을 부여한 것으로는 부족하다며 외국인 변호사의 참여를 전면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입법회 유일의 중도파인 틱치연 의원은 "홍콩은 국제도시이고 외국인 변호사의 참여를 금지할 이유가 없다"며 "외국인 변호사를 허용하는 것은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가 제대로 돌아가고 있고 포용적임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틱 의원은 정부가 외국인 변호사의 참여를 허용하거나 불허할 경우 그 이유를 공개해야 한다며 "그렇게 해야 행정장관이 결정을 내릴 때 정치적 고려가 개입될 것이라는 우려를 완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해당 법안은 반중 일간지 '빈과일보'의 사주 지미 라이의 국가보안법 재판을 앞두고 입안됐다.
라이는 자신의 국가보안법 재판에서 영국 왕실 변호사 티모시 오웬을 변호인으로 선임했다.
그러자 홍콩 법무부는 국가보안법 사건에는 외국인 변호사가 참여할 수 없다며 법원에 이의 금지를 요청했으나, 고등법원에 이어 종심법원 모두 기각했다.
이에 지난해 11월 존 리 홍콩 행정장관은 홍콩과 중국 내정에 대한 외국의 간섭 사례가 많았다면서 중국 입법부인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상무위원회에 외국인 변호사의 국가안보 관련 사건 참여 문제에 대한 유권 해석을 요청했다.
이후 홍콩 검찰이 중국 당국의 판단이 나올 때까지 라이의 재판 연기를 신청해 라이의 해당 재판은 올해 9월로 연기됐다.
홍콩 정부가 현지 법과 관련해 중국 당국의 해석을 구한 것은 6번째이며, 국가보안법과 관련해서는 처음이다.
2020년 6월 30일 시행된 홍콩국가보안법은 국가 분열, 국가정권 전복, 테러 활동, 외국 세력과의 결탁 등 4가지 범죄를 최고 무기징역형으로 처벌할 수 있도록 한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공을 다시 홍콩 당국에 넘겼다.
지난해 12월 30일 전인대 상무위는 외국인 변호사의 홍콩 국가안보 관련 사건 참여 문제에 대해 홍콩 행정장관과 홍콩 국가안전수호위원회가 결정할 일이라고 밝혔다.
국가안전수호위원회는 홍콩 행정장관이 이끌며 중국 정부 홍콩 주재 연락판공실(중련판) 주임이 고문을 맡는다.
이에 지난 2월 홍콩 법무부는 외국인 변호사의 참여가 국가 안보의 이익에 반하는 것으로 간주될 경우 이를 금지할 수 있는 권한을 행정장관에게 부여하는 내용의 개정 법안을 입안했다.
라이는 다른 빈과일보 간부들과 함께 국가보안법상 외세와 결탁한 혐의로 기소됐다.
그는 2019년 반정부 시위 당시 불법 집회 참여 혐의 등으로 2020년 12월부터 수감된 상태이며 사기죄로 징역 5년 9개월이 추가되기도 했다.
1995년 창간한 빈과일보는 당국의 전방위 압박 속에 2021년 6월 자진 폐간했다.
AFP 통신은 "홍콩은 한때 외국인 변호사의 법률 시스템 참여를 허용하는 관습법 전통으로 찬사를 받았다"며 "이번 개정 법안은 중국이 2019년 반정부 시위 이후 홍콩에서 반체제 인사들을 완전히 없애버리려는 가운데 홍콩의 법률·정치적 지형에 가해진 가장 최신 변화이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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