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유럽에 대거 팔리는 러 농축우라늄…대러제재에도 미포함
(서울=연합뉴스) 노재현 기자 =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들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와 외교적으로 대립하고 있지만 핵연료 수급과 관련해서는 섣불리 손을 놓지 못하는 모양새라는 지적이 나왔다.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과 유럽 국가들이 원자로 가동을 위한 핵심 연료인 농축우라늄을 러시아에 크게 의존하는 점이 성가신 문제가 되고 있다고 1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현재 원자력 발전은 미국 내 전기 공급량의 거의 20%를 차지하고 유럽에서는 그 비중이 약 25%다.
지난달 원전 가동을 모두 멈추면서 이른바 탈(脫)원전을 완성한 독일이 있지만, 미국과 유럽의 많은 국가는 오히려 에너지 효율성이 높은 원전을 추가 건설하며 러시아산 화석연료 의존도를 낮추려는 모습을 보여왔다.
지난 3월 미국 조지아에 있는 원자로가 처음 핵분열을 시작하면서 상업용 작업으로 가는 중요한 발걸음을 뗐다.
또 지난달 핀란드에서는 유럽 최대 규모로 건설된 원자로 올킬루오토 원전 3호기(OL3)가 가동에 들어갔다. 폴란드는 작년 11월 첫 원전 건설 사업자로 미국 업체인 웨스팅하우스를 선정했다.
그러나 원자력 발전의 연료를 러시아산 농축우라늄에 의존하는 현실이 아주 까다로운 문제를 만들고 있다고 WSJ은 지적했다. 전 세계 핵연료용 농축우라늄의 약 40%가 러시아에서 생산되는 것으로 알려져서다.
이처럼 러시아의 존재감이 커진 발단은 약 3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은 1993년부터 2013년까지 진행된 `메가톤을 메가와트로(Megatons to Megawatts)' 프로젝트를 통해 러시아 핵폭탄에 장전됐던 고농축 우라늄을 민간발전용 저농축 핵연료로 전환해 수입했다.
냉전이 끝난 뒤 러시아의 핵탄두를 줄이려는 미국의 노림수였는데 러시아는 농축우라늄을 싸게 공급하면서 세계 시장에서 지배력을 확대할 수 있었던 반면, 미국과 유럽 내 원자력 산업은 축소될 수밖에 없었다.
러시아는 2013년 미국 정부와 계약이 끝난 뒤 미국 민간 분야에 농축우라늄을 상업적으로 판매하고 있다.
러시아의 국영 원자력 회사 로사톰이 만든 농축우라늄은 미국 핵연료에서 4분의 1을 차지한다.
영국 싱크탱크 왕립합동군사연구소(RUSI)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회사들이 로사톰에 지급한 금액은 거의 10억 달러(약 1조3천억원)로 추정된다.
이와 관련해 미국우라늄생산자협회 회장인 스콧 멜뷔에는 "그 돈이 러시아 방산복합체에 들어가고 있다"며 "우리는 전쟁에서 양쪽 모두에 자금을 대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하고 있지만 러시아에도 핵연료 구매로 돈을 내고 있다는 지적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뒤 여러 제재를 받고 있지만 핵연료는 그 대상에서 빠졌다.
이에 따라 미국에서는 러시아에 대한 의존을 낮추고 자국의 핵연료 산업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미국 원전업체 웨스팅하우스의 최고경영자인 패트릭 프래그먼은 "정부는 원자력 산업이 어떻게 되는지 주시할 필요가 있다"며 "서방국들에서 어느 정도의 시설들이 어느 순간 멈추게 된다면 비상벨이 울릴 것"이라고 말했다.
noj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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