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신 "거짓 뒤범벅, 고발자 가해…방어적 태도로 뒤틀린 대답" 비판
(서울=연합뉴스) 김동호 기자 = "대선과 낙태에 대한 거짓말, 그리고 고발자에 대한 가해."(AP 통신)
"트럼프의 타운홀 미팅은 온통 거짓말로 점철됐는데…사실 이렇게 될 것으로 예측 가능한 일이었다."(가디언)
성추행 사건에 대한 거액의 피해배상 평결을 받고 바로 이튿날인 10일(현지시간) TV에 등장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한시간 넘게 이어진 방송 내내 개인 추문과 국내외 정치 현안 등 다양한 주제에 걸쳐 발언을 쏟아냈다.
이를 지켜본 다수의 유력 외신은 분석 기사를 통해 그가 자신에게 불리한 상황에 대해서는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며 허위·억지 주장만 늘어놓았다고 비판했다.
◇ "2020년 대선 결과는 조작됐다" 부정선거 주장 고수
이날 CNN이 개최한 '공화당 대선후보 타운홀(town hall)' 프로그램에 출연한 트럼프 전 대통령은 방송이 시작되자마자 5분여에 걸쳐 자신이 재선에 실패한 2020년 대선이 부정선거였다는 취지의 발언을 속사포처럼 토해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왜 당신이 대통령으로 다시 선출돼야 하느냐'는 첫 질문을 받기가 무섭게 "조작된 선거였다"고 포문을 열었고, 스튜디오 객석의 공화당 지지자 일부는 열렬한 환호로 화답했다.
진행자는 사실관계가 어긋난 발언들을 지적하며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 패배한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꼬집었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같은 주장을 반복하거나 주제를 돌리는 등 현란한 말솜씨로 요리조리 피해갔다.
오죽하면 주최측인 CNN이 별도의 팩트체크 보도를 통해 "방송 시작 후 몇초만에 트럼프의 첫번째 거짓말이 튀어나왔다"고 지적해야 할 정도였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또 지난 대선 결과에 반발한 지지자들이 2021년 1월 6일 워싱턴DC 의회의사당에 난입한 폭동 사태와 관련해서도 '안전 확보를 위해 병력 1만명을 요청했다', '당시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선거인단 투표결과를 주의회로 되돌려보낼 권한을 갖고 있었다' 등 거짓만을 반복했다고 미 공영라디오 NPR은 지적했다.
그는 의사당에 들이닥친 이들이 선거가 "조작된" 사실을 믿고 있었다며 "그들은 자랑스럽게, 마음속에 사랑을 품고 그곳에 서 있었다"며 "믿을 수 없는 아름다운 날이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당시 사태를 미화하는 듯한 발언이다.
◇ 성폭력 피해자 캐럴에 "추잡한 여자" 조롱하고 갈채 받기도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 1990년대 중반 유명 패션 칼럼니스트 출신 E. 진 캐럴에게 성폭력을 가했다는 혐의에 대해서도 강변을 굽히지 않았다.
그는 성추행 혐의를 인정한 배심원단의 판단이 향후 여성 유권자 민심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을 들은체만체 하며 "이 여자는…나는 그를 모른다. 만난 적도 없고, 그가 누구인지 짐작도 못했다"며 시치미를 뗐다.
또 캐럴을 성대모사하듯하는 우스꽝스러운 목소리를 내며 좌중의 웃음을 이끌어내더니 피해자 주장을 "가짜 이야기"라고 매도했다.
캐럴을 "정신나간 사람", "추잡한 여자"라고 깍아내리는 말도 서슴지 않았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이 발언으로 트럼프는 우레와 같은 갈채를 받았다"며 "성추행 사건이 그의 백악관 복귀 시도에 타격을 줄 것이라는 공화당 내 우려도 일단 잠재운 것"이라고 평가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을 여러차례 곤경에 빠뜨렸던 '음담패설 녹음파일'도 다시 도마에 올랐지만, 그는 얼굴에 '철판'을 깐듯 흔들림 없는 모습이었다.
2005년 연예매체 '액세스 할리우드'의 녹음파일에 "유명인이면 여성의 성기를 움켜쥐어도 괜찮다" 등 음성이 담긴 것과 관련한 질문에 트럼프 전 대통령은 "우연히도 그게 사실이기 때문에, 이를 되돌릴 수는 없다"고 대꾸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중국계 인구가 모여사는 뉴욕의 차이나타운을 언급하며 "영어도 못 하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고 인종주의적 시각이 담긴 듯한 표현도 썼다.
◇ CNN 진행자도 페이스에 말려 속수무책…"넌센스 폭풍에 휩쓸려"
발언 내용을 바로잡거나 대화 주제를 조율하려는 진행자의 노력은 매번 무위에 그쳤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이날 공화당 지지층과 무당층 등이 섞인 참석자들과 트럼프 전 대통령 사이 문답 형식의 타운홀 미팅 진행을 맡은 CNN의 케이틀런 콜린스 기자가 시종 트럼프 전 대통령의 '넌센스 폭풍'에 휩쓸린 듯한 모습이었다고 평가했다.
특히 콜린스 기자가 플로리다주(州) 마러라고 사저에 대통령 재임시절 기록물 불법 반출된 의혹을 묻는 대목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은 "당신은 형편없는 인간"이라고 일갈해 청중의 박수를 이끌어냈다.
AP 통신은 "인터뷰에 임한 진행자는 지속적으로 팩트체크를 하거나 당면한 주제에 초점을 맞추려고 고군분투했지만, 트럼프는 길고 뒤틀린 대답을 내놓곤 했다"고 촌평했다.
그러면서 "트럼프를 향하는 온갖 송사의 압박이 커지고 있지만, 동시에 그는 그 어느때보다 대선후보로 선출될 수 있는 강력한 입지에 서고 있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NPR은 "트럼프 전 대통령은 뭔가 동의하지 않는 사안이 튀어나오거나 정치적으로 곤란한 상황에 빠지면 방어적으로 비난을 퍼붓는 전형적인 모습을 다시금 보여줬다"고 꼬집었다.
NPR은 "허장성세와 도발적 언사로 정치 경력을 쌓아온 이 76세의 인간에게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나"라고 비꼬았다.
d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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