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주제 개혁 등 급진적 공약 내건 전진당 돌풍…태국 정치 격변
(방콕=연합뉴스) 강종훈 특파원 = 14일(현지시간) 치러진 태국 총선에서는 변화를 갈망하는 태국인들의 민심이 확연히 드러났다.
군부가 임명한 상원 의원들이 총리 선출에 참여하는 현 제도 탓에 정권 교체를 확신할 수 없지만, 표심은 '민주 진영' 야권의 손을 들어줬다.
왕실모독죄와 징병제 폐지 등의 공약을 바탕으로 젊은 층의 강력한 지지를 얻은 전진당(MFP)이 태국 정치 격변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유권자들은 태국에서 금기시되는 군주제 개혁까지 내세운 진보 정당에 과감히 표를 던졌다.
전진당은 군부 정권과의 대립 끝에 2020년 헌법재판소의 판결로 해산된 퓨처포워드당(FFP)의 후신이다.
젊은 층의 광범위한 지지를 받던 FFP 해산 이후 태국에서는 반정부 시위가 거세게 일어났다. 반정부 시위 후 첫 선거였던 이번 총선은 젊은 층 유권자가 대거 투표장으로 향해 높은 투표율을 기록했다.
피타 림짜른랏(42) 전진당 대표는 당초 여론조사에서 1위를 달리던 제1야당 프아타이당의 총리 후보 패통탄 친나왓을 추월할 정도로 인기가 가파르게 상승하며 선거 판세를 뒤흔들었다.
패통탄은 해외 도피 중에도 태국 정치에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해온 탁신 친나왓 전 총리의 막내딸이다.
이번 총선을 앞두고 진작부터 야권의 승리는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졌다. 초점은 정권교체를 위해 필요한 압승 여부에 맞춰졌다.
코로나19 사태 속 경제 위기, 군부의 권위주의 통치에 염증을 느낀 국민들이 변화를 선택할 것으로 전망됐다.
타이렐 하버콘 미국 위스콘신대 교수는 총선을 앞두고 "젊은 층의 높은 투표율과 군부 통치로 인한 피해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이번 선거 결과를 결정할 주요 요인"이라며 "9년간의 군부 통치 이후 예전에는 평온이 깨지는 것을 원치 않던 이들조차 변화를 맞을 준비가 돼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선거로 나타난 민심과 별개로 정권 교체 여부는 불투명하다.
2017년 군부가 개정한 헌법에 따라 총리 선출에는 하원 의원 500명 외에 군부가 임명한 상원 의원 250명도 참여한다. 상·하원 합동 투표에서 과반인 376석 이상을 확보하는 쪽이 정권을 잡게 된다.
상원이 군부 진영에 표를 몰아준다면 야권은 하원에서만 376표를 얻어야 한다. 반면에 군부 진영은 상원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다는 전제하에 하원에서 126표만 모으면 정권을 유지할 수 있다.
향후 연정 구성을 둘러싸고 각 진영 간의 치열한 줄다리기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피타 림짜른랏 전진당 대표는 프아타이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해 야권이 집권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는 "야권 연정은 태국이 직면한 도전에 대처하기 위한 완벽한 길"이라며 "우리는 함께 태국을 변화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프아타이당의 패통탄도 "국민들의 목소리가 가장 중요하다"며 전진당과의 연대를 시사했다.
다만 전진당과 프아타이당 양당만으로는 상·하원 과반 확보를 확신할 수 없으므로 다른 정당의 합류가 필요하다.
제3당 자리에 오른 품차이타이당이 '킹메이커' 역할을 할 가능성이 있다. 아누틴 찬위라꾼 부총리 겸 보건장관이 이끄는 품차이타이당은 현 연립정부에 참여했지만, 군부 출신 정당은 아니며 중도 성향으로 분류된다.
피타 대표는 군부 세력과의 연대 가능성은 일축했으나, 품차이타이당과는 협력할 수 있다고 밝혔다.
입지가 크게 약화한 군부 측의 총선 이후 움직임도 변수다. 태국은 1932년 이후 쿠데타가 19차례 발생하는 등 군부의 정치 개입이 빈번했다.
정치전문가들은 당장 쿠데타가 일어날 가능성은 작지만, 정당 해산 등 법적 수단으로 군부가 야권을 견제할 수 있다고 전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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